부 채
이 세 기
왜 이리 사는 게 힘드냐
아내가 모로 누운 채
어젯밤에 한 말이다
나는 딴 청을 부리듯
부채를 부친다
여울물을 거슬러올라가는
물고기 먹점 찍힌
부채는 팔랑팔랑 바람을 일으킨다
왜 이리 덥냐며 딴 시늉을 걸지만
달력에 기일이며 약속들이
밤고양이마냥 오는 게 아닌가
부채야말로 내 더위쯤 우습게 아는가
악귀라도 쫓는 양 부채는
바람을 일으킨다
덥기로 따지자면 모로 누운 아내의
침묵이 더 더운 법
나는 또 부채를 찾는다
머리맡에 가까이 둔
부채로 나는 또
소리가 나도록 바람을 일으킨다
아내의 입에서 생활이 더 나오기 전에
조금달
방 안 가득 들어오시나
들물 오듯
들물 오듯
아내여 일일랑
잠시 덮어두오
낮이 설움에 겨워서
새까맣게 게워내는 밤에는
거미도 그물을 거두고
칠흑 속으로 새까맣게 사라지는
귀뚜라미 우는 밤에는
- 이세기 시집 『언 손』(창비, 2010. 9)
- 시인의 말 :
내 고향 바다에는 가마우지와 물고기가 있다. 소금 바다로 뛰어들어
숨이 막히는 고통을 견뎌내며 생존을 위해 물질을 하는 가마우지와
부릅뜬 눈으로 깊은 바닷속을 헤쳐나가는 물고기의 삶에서 나는 시와
시인의 운명을 생각한다. 그 필사의 몸부림이 언어라면 그대로 시가 될
것이다. 나는 나의 언어가 세상에 길들여진 언어가 아니라, 세상과 맞서
바닷속을 유영하는 가마우지와 물고기의 눈처럼 깨어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내게는 멀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시란 어디로 가야 하는가.
2010년 9월
이세기 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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