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이세기] 부채 / 조금달

문근영 2011. 12. 30. 11:08

부 채

 

  이 세 기

 

 

왜 이리 사는 게 힘드냐

아내가 모로 누운 채

어젯밤에 한 말이다

 

나는 딴 청을 부리듯

부채를 부친다

 

여울물을 거슬러올라가는

물고기 먹점 찍힌

부채는 팔랑팔랑 바람을 일으킨다

 

왜 이리 덥냐며 딴 시늉을 걸지만

달력에 기일이며 약속들이

밤고양이마냥 오는 게 아닌가

 

부채야말로 내 더위쯤 우습게 아는가

악귀라도 쫓는 양 부채는

바람을 일으킨다

 

덥기로 따지자면 모로 누운 아내의

침묵이 더 더운 법

나는 또 부채를 찾는다

 

머리맡에 가까이 둔

부채로 나는 또

소리가 나도록 바람을 일으킨다

아내의 입에서 생활이 더 나오기 전에

 

 

 

 

 

조금달

 

 

방 안 가득 들어오시나

 

들물 오듯

들물 오듯

 

아내여 일일랑

잠시 덮어두오

 

낮이 설움에 겨워서

새까맣게 게워내는 밤에는

 

거미도 그물을 거두고

칠흑 속으로 새까맣게 사라지는

귀뚜라미 우는 밤에는

 

 

- 이세기 시집 『언 손』(창비, 2010. 9)

 

- 시인의 말 :

                     내 고향 바다에는 가마우지와 물고기가 있다. 소금 바다로 뛰어들어

                   숨이 막히는 고통을 견뎌내며 생존을 위해 물질을 하는 가마우지와

                   부릅뜬 눈으로 깊은 바닷속을 헤쳐나가는 물고기의 삶에서 나는 시와

                   시인의 운명을 생각한다. 그 필사의 몸부림이 언어라면 그대로 시가 될

                   것이다. 나는 나의 언어가 세상에 길들여진 언어가 아니라, 세상과 맞서

                   바닷속을 유영하는 가마우지와 물고기의 눈처럼 깨어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내게는 멀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시란 어디로 가야 하는가.

 

                                                                                                    2010년 9월

                                                                                                    이세기 모심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꽃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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