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임영조]운주사 와불-[김신예]운주사 와불-[신현정]와불臥佛-[허형만]운주사에서

문근영 2011. 12. 31. 12:04

운주사 와불


               임영조

 

  옛날옛날 아주 먼 옛날에 키 크고 마음 착한 미남 석공과 키 작지만 요염한 공주가 한가윗날 밤 우연히 서로 눈이 맞아 연정을 품게 되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행복한 유부남 유부녀라 아무도 모르게 사랑을 나누게 되었고 사랑이 날로 깊어질수록 한편 괴로워했다 허나 그들은 마침내 야반도주를 모의하고 배 한 척을 마련하려 백방으로 뛰었다 하늘도 그 애틋한 순애에 감복하여 이 세상 아닌 딴 세상에 가서 행복하게 살라고 구름배 한 척을 내려주었다
  그들은 사랑에 부푼 돛을 올리고 세상 밖으로 밤낮없이 노를 저었다 그러다 비바람 몰아치던 칠석날 저녁 그들의 배는 북두칠성 모서리에 부딪쳐 화순군 도암 들녘에 추락하고 말았다 그들의 육신과 배의 잔해는 땅에 떨어지면서 크고 작은 바위로 굳어 도처에 널려졌다 하늘은 덫으로 놓아둔 북두칠성에 좌초된 것을 못내 가엾게 여겨 칠석날 저녁이면 일곱 별을 내려 곡하게 하고 비를 뿌렸다 그리고 천상의 석공들을 내려 보내 백일 동안 밤도와 그들의 석상을 세우게 하고 배의 잔해로 천불천탑을 완성하라 명했다
  드디어 완성된 석상을 막 세우려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새벽닭이 울었다 그 소리에 놀란 석공들은 그만 서둘러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운주사 영구산 마루 양지녘에는 그 석공과 공주가 금실 좋은 와불로 누워 세상 밖으로 갈 구름배 한 척 기다리고 있다 곧 나란히 일어날 듯 하체 약간 비스듬히 쳐든 채

  치정도 지극하면 성불하는가?
 
-임영조 시전집『그대에게 가는 길 2(제5시집)』(천년의 시작, 2008)

-----------------------------------------------

운주사 와불

       
            김신예

 

나는 집 없는 피안의 와불
산중에 바람소리 벗삼아
득도한 몸이라
여기 누워 천년을 산다 한들
무슨 근심 있으랴
새처럼 훨훨 삼라만상 떠돌다
등 붙이면 거기가 하룻밤 거쳐
이승의 탐할 것 무엇인가
해탈에 이른 자는
한 줄기 햇살조차 밟지 않는 법
약하고 어리석기가
사람보다 더한 것 무엇이던가
저기 산 아래 석불을 보라
팔 하나 잘라 개울에 던져 넣고
머리도 떼어 길 위에 버려 두니
왜냐고 누가 묻거든
무슨 말을 해주랴
그저 미소만 지어 보일 뿐

 


-시집『히잡 쓴 여자』(시평사, 2007)
 

-----------------------------------

와불臥佛

 

         신현정

 

 

나 운주사에 가서 와불臥佛에게로 가서


벌떡 일어나시라고 할 거야


한세상 내놓으시라고 할 거야


와불이 누으면서 발을 길게 뻗으면서


저만큼 밀쳐낸 한 세상 내놓으시라고 할 거야


산 내놓으시라고 할 거야


아마도 잠버릇 사납고 무심코 내찼을지도 모를


산 두어 개 내놓으시라고 할 거야


그만큼 누워 있으면 이무기라도 되었을텐데


이무기 내놓으시라


이무기 내놓으시라


이무기 내놓으시라고 할 거야


정말 안 일어나실 거냐고

 

천년 내놓으시라


천년 내놓으시라고 할 거야

 


-시집『바보 사막』(램덤하우스, 2008)

----------------------------------------

운주사에서

 

           허형만

 

 

운주사에 오면


눕고 싶다


저 와불처럼 나도 누워서


한쪽 팔 턱에 괴고


세상사 지그시, 두 눈 깔고


그만큼만 보거나


아예 몸도 생각도


다 비운 채


허청허청 시린 별로


흐르거나.

 


-시집『영혼의 눈』(문학과사상사, 2002)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흐르는 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