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정진혁
아무도 오지 않는 집에 허기가 문을 열면
누나는 둥근 밥상처럼 어둠에 묻혀있었다
씻을 줄도 모르고 슬픔도 모르는
마냥 둥글기 만한 누나가
발에 채이고 머리를 쥐어 박히면서
밖으로 난 창으로 굽어지는
물 컵 속의 양파 싹을 희미하게 바라보았다
창 넘어오는 빗소리에 섞여
혼자 말을 걸기도 하다가
아무도 열지 못하는 마음
누나는 봄날을 걸어 나갔다
봄바람이 창문 덜컹거리면
나는 그리움에 붕대를 감았다
상처 많은 것이 편한 시절이었다
집 앞 찔레꽃 잎 떨구는 밤
누렇게 바랜 기억을 들고
누나는 집에 흘러들었다
잠을 깨우는 파도 같은 소리
아이고 언제 이래 컸노
언제 이래 컸노
서러움 바다에 다 녹였는가
거칠어진 손에서 미역 냄새가 났다
먼 울진 바닷가에서 눈 맞은 키 큰 황서방과
아이 손잡고 돌아온 누나
누나에게 나는 빗소리였으면
주머니 속 동전이었으면
이도 저도 안 된다면
비릿한 옆이라도 됐으면 좋겠다.
- 시집『간잽이』(세계사, 2010)
************************************************************
***[이영춘] 의 '문'에 들락날락! 한참 서성였다.
앞 문인지 옆 문인지?
옆 문이다!
앞문통행, 정면돌파의 욕구로
손톱만 깨물다가 옆 문에만 살짝살짝.
깊이 들어가면 아프다.
**********************************************
어젯밤, 오래 서성인
[정진혁]의 '옆'
다른 느낌의 '문'과 '옆'을 공유한다.
아! 문 없는 문을 열고
모두의 옆이 될 수 있는 허공!
허기의 충만함을 깜박인다.*******김선아**********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이세기] 대청도를 지나며 / 박대 굽는 저녁 (0) | 2011.12.30 |
---|---|
[스크랩] [이영춘] 문 (0) | 2011.12.30 |
[스크랩] [김용옥] 사는 법 (0) | 2011.12.30 |
[스크랩] [심보선]인중을 긁적거리며 (0) | 2011.12.30 |
[스크랩] [김선우] 아욱국 (0) | 2011.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