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김선우] 아욱국

문근영 2011. 12. 30. 10:54

 
 

아욱국 

 


                                       
  김선우


 


  아욱을 치대어 빨다가 문득 내가 묻는다
  몸속에 이토록 챙챙한 거품의 씨앗을 가진
  시푸른 아욱의 육즙 때문에

  _엄마, 오르가슴 느껴본 적 있어?
  _오,가슴이 뭐냐?
  아욱을 빨다가 내 가슴이 활짝 벌어진다
  언제부터 아욱을 씨 뿌려 길러먹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_으응,그거!그,오,가슴!
  자글자글한 늙은 여자 아욱꽃빛 스민 연분홍으로 웃으시고

  나는 아욱을 빠네
   시푸르게 넓적한 풀밭 같은 풀잎을
  생으로나 그저 데쳐먹는 게 아니라
  이남박에 퍽퍽 치대어 빨아 
  국 끓여먹을 줄 안 최초의 손을 생각하네
  그 손이 짚어준 저녁의 이마에
  가난과 슬픔의 신열이 있었다면
  그보다 더 멀리 간 뻘밭까지를 들쳐업고
  저벅저벅 걸어가는 시푸른 관능의 힘,
  사랑이 아니라면 오늘이 어떻게 목숨의 벽을 넘겠나
  치대지는 아욱 풀잎 온몸으로 거품을
  끓이는 걸 바라보네
 
  치댈수록 깊어지는 이글거리는 풀잎의 뼈
  오르가슴의 힘으로 한 상 그득한 풀밭을 차리고
  슬픔이 커서 등이 넓어진 내 연인과
  어린것들 불러모아 살진 살점 떠먹이는
  아욱국 끓는 저녁이네 오,가슴 환한.  

 

  

 

 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문학과지성사, 2007)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평범한너도밤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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