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 김 언] 말

문근영 2011. 12. 18. 14:23

 

 

  말

 

김 언

 

 

 

나무 한 그루 만들지 않고 숲이 되는 방식을

손 한번 잡지 않고 애인이 되는 방식으로

피 한번 섞지 않고 형제가 되는 방식에서

눈 한번 주지 않고 경치가 되고 풍경이 되는

그 기특한 방식과 더불어

 

풀이 자라는 방향으로

꽃망울이 터지는 방향으로

하늘보다는 땅에 가깝게

좀 더 축축하게

가라앉는 그 문장을

모조리 끌어올려

새로 태어나는 나무

 

하늘보다는 땅에 가깝게

뿌리보다는

좀 더 뿌리 밑으로

나무가 자라는 방향으로

말은 퍼진다

하늘인가 땅인가

이 방향인가

저 방향인가

나뭇가지가 퍼지는 모양으로

 

하늘보다는 땅에 가깝게

뿌리보다는

좀 더 뿌리 밑으로

풀도 나무도

숲도 모조리 끌어올려

말은 터진다

몸 한번 섞지 않고

 

 

 

                            『시산맥』(201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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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 / 1973년 부산 출생. 부산대 산업공학과 졸업. 1998년 《시와 사상》으로 등단. 시집 『숨쉬는 무덤』『거인』『소설을 쓰자』.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서귀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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