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김 언
나무 한 그루 만들지 않고 숲이 되는 방식을
손 한번 잡지 않고 애인이 되는 방식으로
피 한번 섞지 않고 형제가 되는 방식에서
눈 한번 주지 않고 경치가 되고 풍경이 되는
그 기특한 방식과 더불어
풀이 자라는 방향으로
꽃망울이 터지는 방향으로
하늘보다는 땅에 가깝게
좀 더 축축하게
가라앉는 그 문장을
모조리 끌어올려
새로 태어나는 나무
하늘보다는 땅에 가깝게
뿌리보다는
좀 더 뿌리 밑으로
나무가 자라는 방향으로
말은 퍼진다
하늘인가 땅인가
이 방향인가
저 방향인가
나뭇가지가 퍼지는 모양으로
하늘보다는 땅에 가깝게
뿌리보다는
좀 더 뿌리 밑으로
풀도 나무도
숲도 모조리 끌어올려
말은 터진다
몸 한번 섞지 않고
『시산맥』(201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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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 / 1973년 부산 출생. 부산대 산업공학과 졸업. 1998년 《시와 사상》으로 등단. 시집 『숨쉬는 무덤』『거인』『소설을 쓰자』.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서귀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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