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골 시편
-명화
김신용
오래 비워 둔 집
마당에 들어서면, 풀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낫이 새처럼 날아 올 그림
담징의 古刹의 벽에 그려진 老松그림처럼
낫이, 새처럼 날아 와 앉을
그림.
낫이 새처럼 날아 와 앉아
자신을 깨끗이 베어 낼 그림
자신을 깨끗이 베어 내어, 창문마다 바알갛게
불빛 익어 갈 그림.
그 폐허를 떠올리기 위해, 몸이 붓이 되어 있는
풀들은, 전신에 물감을 묻히고 뒹굴면서
때로는 바닥에 몸을 내던지기도 하면서, 마치 드리핑이듯
미로의 손으로 쥔 붓으로, 물감을 아무렇게나 흩뿌리기도 하면서
폐가라는 캔버스 위에 떠올려 놓는 풀들의 거대한
묵화.
오늘도
굴뚝에서, 낫이 피어오른다
저녁 어스름에 잠긴
마을의
집, 낮게 엎드린 지붕 위로 피어오르는
저 평화로운 밥 짓는
연기.
- 시집 『도장골 시편』(천년의시작, 2007)
▶김신용=1945년 부산 출생. 1988년 '현대시사상' 등단. 시집 '환상통' 등. 천상병문학상 등 수상.
**여기 오래 비워둔 집에 풀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네요. 저 허허로운 그림. 언젠가는 필경 낫을 불러들이고 말 그림을 그리고 있네요. 나는 이런 그림에 참 익숙하지요. 지금 나의 고향마을도 한 집 건너 한 집씩 풀들이 그림을 그리는 중이거든요. 성선경·시인
-[국제신문] 아침의 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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