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차례
김명인
그가 떠나면서 마음 들머리가 지워졌다
빛살로 환하던 여백들이
세찬 비바람에 켜질 당할 때
그 폭풍우 속에 웅크리고 앉아
절망하고 절망하고서 비로소 두리번거리는
늦봄의 끝자락
운동모를 눌러쓰고 몇 달 만에 앞산에 오르다가
넓은 떡갈잎 양산처럼 받들고 선
꿩의밥 작은 풀꽃을 보았다
힘겹게 꽃 창 열어젖히고 무거운 머리 쳐든
이삭꽃의 적막 가까이 원기 잃은 햇살 한 줌
한때는 왁자지껄 시루 속 콩나물 같았던
꽃차례의 다툼들 막 내려놓고
들릴락 말락 곁의 풀 더미에게 중얼거리는 불꽃의 말이
가슴속으로는 허전한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벌 받는 것처럼 벌 받는 것처럼
꽃 진 자리에 다시 써보는
뜨거운 재의 이름
시든 화판을 받들고 선
저 작은 풀꽃이 펼쳐내는 이별 앞에
병든 몸이 병과 함께 비로소 글썽거리는, 해거름!
ㅡ시집『꽃차례』, 문학과 지성사(2009)
▶김명인=1946년 경북 울진 츌생.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동두천' '꽃차례' '아버지의 고기잡이' 등.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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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차례란 말! 참 눈물겹다. 우리가 태어나 자라고 혼인해 자식 두는 일이 사람의 꽃차례다. 아름다운 꽃그늘로 벌 나비떼 붕붕 날아들었던 시절 지나 콩나물시루 같은 빽빽한 사랑의 능선을 돌아 글썽이는 해거름에 서면 불꽃의 말이 밀물진다.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이라, 꽃 버린 그 자리 열매 맺는다. 전다형·시인
-[국제신문] 아침의 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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