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전성호
비가 오면
나무들은 물고기가 된다
나무들 본향은 우주
빗방울에 온몸 미대야
똑바로 상승할 수 있지
빗방울을 거슬러
하늘로 솟는 나무들의 날개
버드나무 잎은 버들치 떼를 몰고
밤나무 잎은 정어리 새끼 떼를 몰고
오동나무 잎은 가오리 떼를 몰고, 몰고
비가 오면 모든 나무들
춤추는 물고기다
-시집 『저녁 풍경이 말을 건네신다』(실천문학사, 2011)
▶전성호=1951년 경남 양산 출생. 2001년 '시평' 등단. 시집 '캄캄한 날개를 위하여' 등.
**비를 맞으며 빗살빗살 팔랑거리는 나무이파리를 바라보는 일은 즐거움 그 이상이다. 시인에게 젖은 이파리들은 파닥거리며 어디론가 몰려가는 물고기 떼다. 이파리는 끊임없이 빗방울을 튕기며 배웃음을 짓는다. 나뭇잎의 갖가지 특성에 따라 물고기를 연상하는 재치가 싱그럽다. 잠시 물고기가 된 이파리 무리는 빗방울을 거슬러 자신의 고향인 우주로 헤엄쳐 날아오른다. 우주는 시인의 본향이며 나무들의 본향이다.
수직으로 내리는 빗방울에 온몸 내 맡기고 상승하는 물고기나무들과 비의 지느러미들, 상승과 하강의 절묘한 조화다. 권정일·시인
-[국제신문] 아침의 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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