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동 배추
신덕룡
봄동 무침을 먹는다.
남의 집에 얹혀살 듯 오갈이 들어
낮게 낮게 바닥으로 기어가며 숨 쉬던 것
싸아 하면서도 뒷맛은 달다.
쌓인 눈에 못 이겨, 한밤중
혼자서 몰래 어깨죽지를 꺾어버리던 소나무나
폐지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가던 노인이
한꺼번에 몰아쉬는 폭 삭은 한숨 같은데
툭툭 털고 남은 길 마저 가는 걸 보면
마약이다. 입에서
단내 나도록 엎어지고 깨지고 피 흘리면서도
헐거워질 때마다 바투 잡는
끊을 수 없는 미망(迷妄)의 슬픈 끈 아니냐.
어느 날 내가 손을 놓을 때
여러 번 고쳐 잡았으니
뒷맛은 간간하겠다. 그럭저럭 달큰하겠다.
문득 위로하고 싶은 날, 있겠다.
-시집 『아주 잠깐』(서정시학, 2009)
▶신덕룡=1956년 경기도 양평 출생. 시집 '소리의 감옥' '아주 잠깐' 등. 김달진문학상 수상.
**나는 봄동 같은 사람을 알고 있다. 어느 날 내가 손을 놓았을 때 여러 번 고쳐 잡아주던 사람을 알고 있다. 이런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다. 이런 사람의 뒷맛은 간간하거나 달큰하다. 자신은 한밤중 혼자서 몰래 어깨죽지를 꺾어버리는 아픔을 가졌으나 그 옆의 사람들에게는 달큰하게 큰 위로가 되겠다. 성선경·시인
-[국제신문] 아침의 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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