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김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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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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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누군가
까마중 열매를 보고 반갑게 "어머, 이 귀한 까마중 열매가 여깄네!" 하면서 까맣게 익은 까마중을 따서 연신 입에 집어넣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다. 동질감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막내가 어느 날 "뭐가 먹고 싶니?" 하니 "까마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서울
하늘에서 까마중을 어찌 구한단 말인가?
강원도 산골에서 흑진주를 닮은, 잘 익은 까마중을 만났다. 집까지 가져가기는 뭐해 일단
맛을 보니 일품이다. 이번 주말에 "거기에 까마중 있더라" 하면 막내가 강원도 가는 길 쫄래쫄래 따라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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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랑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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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한 주
전에 콩을 베면서 추수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강원도까지 따라나선 막내에게 콩을 구워주지 못한 것이 내내 후회가 되었다. 잘 말린 콩을 막대기로
'탁, 탁!' 치니 사정없이 콩깍지가 터진다. 알뜰살뜰 콩을 터는데도 어머니는 "에그, 콩이 아야! 아야! 하면서 엄살 부리겠다, 그래서 어디
알뜰하게 털겠냐?" 하신다.
아버지는 대충 털라고 하신다. 남은 것은 쇠죽 쑬 때 넣으면 소가 먹을 터인데, 뭐 그리 욕심을
내냐는 것이다. 올해는 콩 농사가 잘 됐다. 뭐든지 풍성해야 마음도 넓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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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꾸리낚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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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미꾸리낚시. 그 이름을 증명이라도 할 듯이 낚싯줄처럼 긴 줄기를 하늘로 향하고는 떡밥을 이고 있는 듯 씨앗이 송골송골 달려 있다.
가을하늘이 그들에게는 연못이고, 그 연못 안에 사는 미꾸라지는 구름이다. 가을 하늘에 걸린 구름이라도 잡으려는 듯 바람을 타고 흔들거리는 폼,
그 곳에 잠자리라도 하나 앉으면 영락없이 낚시터 풍경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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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수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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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사무실
한쪽에서 익어가는 산수유, 나는 내내 산수유가 익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나 말고도 여러 사람이 산수유 익기를 기다리니, 까딱하다가는
내 몫은 하나도 없을 것 같다.
내 몫이 없으면 어떠랴! 이렇게 붉게 익어가는 산수유를 보고 또 보는 즐거움이 있는데. 열매를
맺는다는 것, 그것은 이렇게 아름다운 일이고, 익어간다는 것, 그것은 더 아름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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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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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산초.
추어탕에 넣어 먹으면 좋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봄날 야릿야릿하게 올라오는 이파리에 반했다. 산초이파리를 한 줌 따서 된장을 찍어 먹으면 그
향이 입안 가득히 남는다. 오죽 맛이 좋았으면, 먹다가 상한 이빨이기는 하지만 이빨이 부서진 줄도 모르고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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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가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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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여름 내내
아이들에게 오가피 삶은 물을 먹였다. 아이들의 뼈를 튼튼하게 해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오가피를 넣고 펄펄 끓여 물통에 담아 학교에 가는
아이들에게 건넸다.
큰 아이가 장난으로 미용에 좋은 물이라고 했더니, 친구들이 너도나도 먹어보자고 해서 자기는 먹지 못했단다.
다음날부터 친구 몫까지 챙겨주어야 했던 오가피. 나는 술을 담가 두었다 친한 친구가 오면 내어놓고 싶었는데, 아이들이 먹을 만큼 정도 밖에는
구하지 못했다.
오가피 열매를 보니 그렇게 잘리고 수난을 당하면서도 열매를 맺었다는 것이 기특하기만 하다. 역시, 열매 맺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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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미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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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잘 익은
오미자로는 올해 유일하게 만난 것이다. 가뭄이 심해서 풍성하진 않아도 붉게 익은 열매는 오미자 중에서 으뜸이었다. 10개가 채 되지 않는 열매,
다섯 가지 맛을 느껴보기도 전에 다 없어질 것만 같다.
해걸이를 한다면 내년에는 무척이나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니 잘 기억해
두었다가 내년 이맘때 그 곳에 찾아가야겠다. 한 살 더 먹은 아이와 그 곳에 가서 '작년 이맘때 만난 그 나무가 이 나무고, 그 열매가 이
열매였단다' 하고 늘 그 자리에서 피고 지는 꽃들과 나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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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동덩굴의 열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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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인동덩굴의
열매. 기억이 맞다면 그렇다. 댕댕이덩굴의 열매는 포도송이처럼 맺혔고, 열매가 조금 무르다. 까마중 같다고 해야 할 것인데 이 열매는 단단하다.
가끔 이렇게 이름을 불러주다가 당혹스럽게 하는 것들을 만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간혹'이 아니라 '대다수'의 들풀들과
들꽃들의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고 있다. 땅에 상처가 나면 가장 먼저 달려가서 피어나는 이 땅의 잡초들, 그들은 이 땅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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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박풀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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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해가
쨍쨍할 때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해질녘에야 눈에 띄었다. 수박풀꽃에서는 수박이 열리지 않는다. 다만 비슷한 수박을 닮은 열매, 그 안에 씨앗을
맺을 뿐이다. 나는 그저 이파리가 닮아서 수박풀인가 했는데 가만히 보니 온전히 익기 전 씨앗을 감싸고 있는 주머니의 줄무늬가 수박을 닮았다.
신비롭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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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수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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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그래도 그
많은 열매들 중에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것들은 바로 이런 열매들이 아닐까? 먹어서 배부를 수 있는 열매들, 요즘이야 주전부리 간식으로
먹지만 그 언젠가는 배고픔을 달래주었던 옥수수.
이제 긴 겨울, 처마 밑에서 혹독한 추위와 싸워야 한다. 얼래야 얼 수 없을
정도로 목말라야 하고, 그 목마름 끝에 흙을 만나면 얼씨구나 싹을 틔우고는 이내 일 년도 안 되어 자기를 심은 사람보다도 훨씬 더 크게 자라는
옥수수.
가을에 만나는 열매들은 모두 아름답고 신비롭다. 그냥 그들을 보고 있으면 마냥 나눠주고 싶다. 마음이 풍성해진다.
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자연과 벗하여 살아가다 자연을 닮은 책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 1, 2>,
<희망 우체통>, <달팽이걸음으로 제주를 보다>등의 책을 썼으며 작은 것, 못생긴 것, 느린 것, 단순한 것, 낮은 것에
대한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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