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집
이 승 욱
아들 둘, 개
한 마리
푸른 대추나무가 삽니다
물론 아내가 살고
저도 살지만요......
채송화 한 떨기 고운 불꽃심지 같이
긴 날의 빈 뜰을 태우는 여름,
더러 맑은 하늘의 창이 열리면서
누군가 지상의 우리 집을
가만히 내려다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는 우리도 모두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그런 때는 하늘의 그 집이 땅에 내려와 있고
땅의 우리 집이 하늘에 올라가 있습니다.
'지상의 집'은 수수한 진술로 이뤄져 있다. 구조는 단순하고 어조는 담담하다.
이 담백한 시를 곱씹어 본다. '아들 둘, 개/ 한 마리/ 푸른 대추나무가 삽니다'
아, 좋다! 개를 키운다거나 대추나무를 기른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개와 함께
살고, 대추나무와 함께 사는 것이다. 정확하지만 우리가 잘 안 쓰는 표현이다.
따지고 보면 개와 대추나무와 우리는 수억 년 전의 한 조상에서 나왔다. 아들
둘과 개와 대추나무가 한 하늘 아래 있다. 그런 깨달음으로 '지상의 집'에 맑은
기운이 차오른다.
<황인숙 . 시인>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2008. 9.)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꽃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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