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시

[스크랩] 상처의 풍경 / 문근영

문근영 2011. 4. 7. 11:16

상처의 풍경 / 문근영

 

 

실핏줄 엉킨 골목

사이사이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지붕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둘러앉아

스며드는 불빛에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고 있다

 

헐거운 창문과 욕망이 배인 담벼락은 금이 가고

금간쪽으로 포클레인이

입 쫙 벌리고 할퀴고 간 자리엔

떨어져 나간 난간과 건물의 뼈가

휘어진 채 앙상하게 남아 있다

 

재개발의 멀쩡한 허우대에 쫓겨

술상이 아버지를 뒤엎고

깨진 생활의 파편이 어지럽게 나 뒹굴고 있다

뿔뿔이 흩어졌던 아이들이

해체된 집들과 복잡하게 뒤엉킨 길에서

풀풀 일어서는 먼지를 마시며 지저분한 기억을

휘젓고 다니고 있다

 

사방이 내 것이 아닌 자리

결국

구름과 손잡고 싶어 높이 올라가고 있는 아파트 그 아래

따끔따끔 바늘 눈총과 비난이 주춧돌 대신

기초공사를 떠받치고 있다

포클레인이 관절을 풀며

빼앗긴 봄을 들어 올리고 있다

 

출처 : 대구문학신문 - 시야 시야
글쓴이 : 문근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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