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당연필 / 문근영
초라한 양철 필통 속에서
심이 뚝 부러진 채 발을 포개고 누운
몽당연필들을 본다
한 겹씩 향나무의 속살 벗길 때마다
또르르 말려 떨어지는 향기, 까맣게 묻어나고
한 벌의 누더기 같은 세월, 갈고 다듬으면
몸속의 중심 감출 도리가 없다는 듯
무뎌진 연필의 뼈가 아픔 끝에 살아난다
뼛속에 축적된 단단함으로 꾹꾹 눌러 쓴
삶의 문장들이 물관을 타고 내려와
소용돌이치고 있다
고요해지면 환히 드러나는 뾰족한 생각들
머리에 이고 온 지우개로
하나, 둘 지워 본다
나이테에서 태어난 삶의 무늬와
수레바퀴처럼 구르던 어제의 흔적이 그리워
닳고 닳아 한없이 작아져도
또 한 번 휘영청 나이테를 감는다
출처 : 대구문학신문 - 시야 시야
글쓴이 : 문근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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