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인력시장에서 / 문근영
새벽잠을 토막 내며 집을 나서야 할 이른 아침
갑자기 몰아닥친 한파는 골이 깊다
빙하기 같은 혹독한 불황의 칼바람 앞에
모여드는 가난들
모닥불 지펴놓고 웅크리고 앉아 언 손 녹이며
차례를 기다린다
구인차량이 올 때마다 일대가 왁자지껄해지고
시간이 흘러 인력시장이 끝날 무렵이면
기도의 약발이 받지 않아 헛물 켠 사내들
자포자기하며 뼛속까지 스며든 시장기를
깡소주로 달랜다
괜히 엄한 데다 화풀이해봐도
어려운 시절은 물러설 줄 모르고
돌아오는 것은 술에 찌들어 나락으로 떨어지는
노쇠한 육신뿐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소주병들이 목을
길게 빼고 발목을 감는 거리, 어둠이 걷히면서
분분히 흩어진 빈 병들 사이로
때 절은 목장갑 하나, 다섯 손가락의 감촉을
기억한 채 버려져 있다
심하게 출렁이는 어려운 생계는 나이테보다
많은 주름살을 만들지만
살다 보면 봄빛 희망처럼 되는 날도 있으려니
내일의 일거리에 눈도장을 찍으며 가난한 어깨에
걸린 아이들의 눈망울이 무기력을 잠재우고 있다
출처 : 대구문학신문 - 시야 시야
글쓴이 : 문근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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