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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하피첩(題霞
帖)」이라는 글은 참으로 짤막한 글입니다. 그대로 옮겨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내가 강진에서 귀양살이 하고 있을 때 몸져 누워있던 아내가 헌 치마 다섯 폭을 부쳐왔다. 아마도 그 치마는 시집 올 때의 활옷으로 여겨지는데, 붉은 색도 이미 바랬고 누른 색 또한 옅어져서 책자로 만들기에 딱 알맞았다. 그래서 잘라서 재단하여 조그만 첩(帖)으로 만들었다. 손이 가는대로 경계의 말을 지어서 두 아들에게 넘겨주었다. 아마도 뒷날에 글을 읽어보면 감회가 일어나 두 어버이의 꽃다운 은택에 유연한 감동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피첩’이라 이름한 것은 바로 홍군(紅裙:붉은 치마)을 돌려서 표현한 말이다. 경오(庚午:1810)년 첫가을(七月)에 다산의 동암에서 쓰다.”
이렇게 두 아들(學淵과 學遊)에 주었다고 기록되었을 뿐 그 첩이 어디에 어떻게 보관되고 있음은 전하는 글이 없는데, 이번에 고물상의 폐지 처리장에서 발견되었다니 그 까닭은 알 길이 없습니다.
그 글을 쓴 3년 뒤인 1813년 7월 14일에 쓰고 그렸다는 「매조도(梅鳥圖)」에 적힌 글은 간단합니다.
“계유(癸酉:1813)년 7월 14일 열수옹(洌水翁:다산)이 다산의 동암(東菴)에서 쓴다. 내가 강진에서 귀양사느라 몇년(수년)이 지났는데 홍씨 부인이 헌 치마 여섯 폭을 부쳐왔다. 세월이 오래되어 붉은 빛도 바래서 가위로 재단하여 네 첩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주고 그 나머지를 사용하여 조그만 가리개를 만들어 딸아이에게 준다”라고 매화나무에 한 쌍의 새가 놀고 있는 그림을 그리고 또 아름다운 시를 지어서 반초체의 멋진 글씨로 써서 시집가는 딸에게 주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지금 이 ‘매조도’는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그 박물관에는 다산의 외손자인 큰 학자 윤정기(尹廷琦)의 시경(詩經)연구서가 함께 소장된 것으로 보아 딸의 시가인 윤씨 집에 소장되었던 것이 고려대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라도 다산의 유품인 친필을 구경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요.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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