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90년대 초반 어느해인가 초봄에
붉은 동백꽃이 남은 봉오리를 하나 둘씩 떨굴때인데 전라도 남단의 강진(康津)땅에 다산초당(茶山草堂)을 찾은적이 있었다. 초당으로 오르는길목에 만덕산(萬德山) 백련사(白蓮寺)의 울창한 동백숲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군락지라고 하며 이 절에 걸려있는 "大雄寶殿" "萬景樓"등의 현판은 조선중기의 명필인 원교(圓嶠)이광사(李匡師)의 글씨로 특유의 구불구불한 용틀임(?)체(體)가 인상깊었었다. 또 초당건너의 바다가 보이는 천일각(天一閣), 보정산방(寶丁山房)등을 구경하고 바위에 새긴"丁石"두글자도 만져보며 정약용(丁若鏞)선생의 옛 자취를 새겨보았다. 내려오는길은 가파른데다 길바닥이 칼날같이 바위를 쪼아 놓은듯하여 발바닥이 아픈데 그 옛날 다산선생이 이길을 힘들게 오르내렸을것을 생각하니 그 18년 유배생활의 신산(辛酸)함이 참으로 막심했으리라는 짐작이 갔다. 이런 상념에 젖어 내려오던중, 아래쪽에서 한떼의 사람들이 한사람을 따라 올라오는게 보여 다가가니 앞장선 사람은 낯이 상당히 익은지라... "아니, 박석무의원 아니십니까?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시오. 그..런데..어디서들 오셨소?" "천안에서 왔습니다. 반갑습니다." 하며 악수를 나누는데 이 양반이 원래 전라도출신 국회의원인지라 충청도에서 온 객(客)들이 자기를 알아보는 것에 기분이 몹시 좋은듯 했다. 하기는 이 朴錫武의원이 그 당시 시끌했던 "5공청문회"로 TV에 자주 나왔으니 얼굴이 많이 알려젔을법도 하지만 사실인즉 이 분은 유명한 茶山硏究家로서 관련 저서가 여러권이 있다. 후에 김대중정권시절 문예진흥원장까지 지낸,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학자에 더 가까운 분으로 이분이 다산초당에서 만난 이후의 국회의원선거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그 무렵 낙선동기(落選同期)들인 지금의 노무현대통령, 원혜영, 김원웅,등등이서 서울의 모처에 불고기집을 차렸는데 그 이름이 바로 "하로동선(夏爐冬扇)"이었다고 한다. 말그대로 "여름의 화로 겨울의 부채"로서 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것을 뜻하는데 이들은 이 뜻을 한걸음 더 나아가 "쓸모가 지금은 없지만(그래서 낙선?) 언젠가는 필요할 때가 있다"라는 뜻으로 새겨 식당 상호로 삼았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내가 알기로는 이 이름을 지은 사람은 그중에서 틀림없이 이 박석무일것으로 추측한다. 왜냐하면 그중에서 제일 그 쪽으로 박식(博學)한 사람은 이분일 것이므로... 내가 오늘 이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 놓는 이유는, 어느 책에서 보고 알았는데 이"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는 말은 그 출전(出典)이 중국 후한(後漢)사람 왕충(王充)이 지은 "논형(論衡)"이라는 책이라는데에 있다. 어느해인가 신문의 문화면에 보니까 이 "논형"이라는 책이 아주 난해하여 국내에 번역서가 없던것을 "중앙대의 이주행교수"가 완역하였다라는 기사가 난 적이 있었다. 이주행교수는 전에 우리 동창회지에 글쓴것도 읽은적이 있어 기억이 나는데다 그 기사를 읽고 아, 우리동창중에도 이런 훌륭한 친구가 있구나 하고 가슴이 뿌듯했고 또 이 책을(이해를 못하겠지만..)꼭 한번 구해 보아야겠다 했는데 무심히 세월이 흘러버렸다. 각설(却說)하고, 이교수같은 동창들이 자주 이곳에 나와서 좋은 글을 올려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고 얼마전 내가 쓴 글에 연관하여 생각나는대로 적어보았다. 위의 부채,선면(扇面)글씨는 "박문약례(博文約禮)" 君子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 군자가 文에 대하여 널리 배우고 禮로써 요약한다면 또한 도에 어긋나지 않을것이다. -논어 雍也篇句- *追信; 李周行 中央大교수를 검색하여 보니 현재 한국話法學會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는데 위의 "논형"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이 되어 있지않아 착오가 있나 의아하지만 이 글은 수정하지 않고 그냥 두려네. 다른 동창도 이 "논형"이야기에 자기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던데... |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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