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Re:`다산 적양용"의 하피첩을읽으며..

문근영 2011. 3. 29. 10:50
[여적] 하피첩
[경향신문 2006-03-28 18:45]    

조선 실학자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은 9명의 아이 중 6명을 잃고 아들 둘과 딸 하나를 길렀다. 다산의 부인 홍씨는 1780년 학질을 앓은 끝에 팔삭둥이 딸을 낳았으나 나흘 만에 잃었다. 곧이어 학연과 학유 두 아들을 본 뒤 구장과 효순을 낳았지만 그 둘도 일찍 잃었다. 1796년에 낳은 삼동과 그 직후 낳은 아이, 그리고 1801년 다산이 유배가기 바로 전에 얻은 농장은 모두 마마로 세상을 떴다. 다산은 유배지 강진에서 보낸 한 글에서 “구장이와 효순이는 산등성이에다 묻었고, 삼동이와 그 다음 애는 산발치에다 묻었다. 농장도 필시 산발치에 묻었을 거다”라고 애통해 했다고 한다.

 

다산의 고달픈 삶만큼이나 그의 자식 사랑은 유별난 데가 있다. 다산 연구가 박석무씨가 다산의 편지를 모아 편역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보면 아버지로서 다산의 다양한 풍모가 드러난다. 두 아들에게 보낸 가계(家戒·집안의 가르침)를 통해 다산은 공부를 하는 법에서부터 생계를 꾸리는 방식, 친구를 사귈 때 가려야 할 일, 친척끼리 화목하게 지내는 방법, 심지어 시를 짓는 의미에 이르기까지 소상하게 일러주고 있다.

 

다산이 오랜 세월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부인 홍씨는 고향에서 혼자 논밭을 가꾸면서 집안 살림을 돌보았다. 다산은 그런 부인이 안쓰러웠던지 그의 글 곳곳에서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 그리고 연민의 정을 내비치곤 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다산이 부인 홍씨의 붉은 치마에 가계를 적어 아들들에게 보냈다는 하피첩(霞피帖) 3점이 발견됐다고 한다. 하피는 원래 조선시대 왕실의 비(妃)·빈(嬪)들이 입던 옷을 말하지만, 다산은 부인이 시집올 때 가져온 이 옷이 붉은 색이라 해서 이같이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다산은 가계를 적은 작은 천조각(12×20㎝)을 한지(16×25㎝) 위에 하나씩 붙여 하피첩을 만들었다. 이 하피첩은 한 개인 사업가가 2년 전 고물상으로부터 우연히 구입했다고 한다. 다산이 하피첩 4점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동안 기록으로만 전해졌으나, 이번에 3점이 발견됨으로써 200년의 세월을 두고 그 값진 유산의 존재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박노승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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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자료 사진이뜨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아침에

중앙일보 에서 이 자료를 보고 다산 정약용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고물상 할머니 손수레에 실린 하피첩..만약 그사람이

발견하지 못했다면 우리의 유산이 휴지가되어

소멸될뻔했는데..참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가정의 규율이 무너져 내리는

현 세대에 단비같은 우리 선인들의 기록인것

같습니다 아침에 [여적]란에 다시 올라왔기에

게시판에 올려봅니다..☆빛--

 

    그 사랑은

    소정 金良任님

    뭇 세월 불 밝혀 놓은 사랑
    미움 없은 큰 품에 안스러움만 담아
    한 사람을 위해해가 되고별이 되고바다가 되는
    헤집어도 마음 깊어서
    소명으로 흐르는 사랑 끝이 없어
    두 손 포갰던 약속 하얀 서린 꽃 내려도
    새 살 오르며 가슴에 불 지피 우네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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