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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4강에 오른 우리 국가대표 야구 선수들에게
병역 특혜가 내려질 거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국위를 선양했고 국민들에게 자부심과 즐거움을 선물한 데 대한 보상이겠다. 하기야 참 대단한 몇
주간이었다. 나만 해도 올해는 한동안 외면했던 국내 프로야구 경기를 꽤 부지런히 챙겨볼 마음을 먹었으니까. 스포츠의 국민 통합 능력을 새삼스럽게
되돌아보게 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른바 한류 스타들에게 병역을 면제해 주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 그들의 공헌이 운동선수들에 못지않다는 것이 근거일 것이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선심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제법 영향력
있는 여권 인사가 긍정적인 언급을 했다는 뉴스도 들린다.
이에 대해 이런 저런 의견들이 나오는 모양이다. 태극 마크를 달고 국가를
위해 뛴 운동선수들과 개인적인 인기와 상업적인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가수들을 똑같이 볼 수 없다는 목소리가 상당히 크게 들린다.
군복무, 마땅한 의무 아니라 피하면 좋은
징벌인가? 그저 관객에 지나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이건
야구 선수나 한류 스타의 문제로만 생각되지는 않는다. 공연한 과민 반응인지 모르겠으나, 국가가 개인의 업적에 대한 보상으로 병역 면제나 특혜를
제시하는 발상에는, 병역의 의무에 대한 인식을 오도할 위험성이 상당히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어떤 공을 세운 사람에게 국민으로서의
당연한 의무인 군복무를 면제해 줌으로써 은연중에 군복무가 기꺼이 감당해야 할 국민으로서의 마땅한 의무가 아니라 할 수만 있으면 벗어나야 하는
징벌인 것 같은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것은 추구하고 나쁜 것은 피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피해야 할 대상은
선이 아니라 악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업적에 대한 보상으로 병역 의무를 피하게 해주는 것은 군대에 가는 것이 곧 좋지 않은 일이라는 관념을
유포할 수 있다. 편법으로 병역 면제를 알선하는 브로커들이 ‘빼내 준다'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써온 것만 봐도 이런 관념이 알게 모르게
유포되었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빼내 주는 것은 말 그대로 구해 주는 것이다. 즉 징벌을 면하게 해 주는 것이다. 이 생각을 연장하면 군대가
거대한 교도소로 상상될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징벌이고 교도소라면, 빠져 나올 수만 있으면 빠져나와야 할 것이다. 빠져나올
수 없는 사람만 군복을 입는다. 이 경우 개인의 능력이든 부모의 영향력이든 편법이든 동원할 수 있는 것은 다 동원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런 혜택을 누린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은 빠져나올 방도나 조건을 갖추지 못한 자들의 시기심이나 질투심에 지나지 않은 것이 되어 버린다.
군 복무가 징벌인 것은, 이 입장에 의하면, 군대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을 차압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잘 나가는 운동선수에게든 연예인에게든 20대의 2년을 군대에서 보내는 것은 커다란 손실이기 때문에 ‘빼줘야’ 하는 것이다. 몇
년 전에 한국 국적을 포기한 한 댄스가수는 자기가 군대에 갔다가 제대하면 나이가 서른이 다 된다는 식의 말을 해서 이런 속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20대의 2년이 소중한 것은 잘 나가는 운동선수나 연예인만이 아니다. 인기가 있고 돈을 잘 버는 사람의 2년은 크고 그렇지
않은 사람의 2년은 작은 것도 아니다. 사람은 하늘과 법 앞에서 평등하고 영혼의 무게는 같다. 징벌이라면 달라야겠지만 의무라면 다를 수 없다.
아직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의 시간을 더 보장해 주는 것이 차라리 더 정의롭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상 찬성하지만, 병역 특혜 방식은 곤란 나라의 긍지를 높이고 국민들에게 자부심과 기쁨을 선물한 이들에게 상응하는 보상을 주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자부심과 기쁨을 선물 받은 사람으로서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 보상의 방법이 병역 특혜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고대 사회에서 노예나 죄수가 전쟁에 나가 공을 세우면 그 대가로 노예의 딱지를 떼어 주거나 죄를 사해 주는 일이 있었다.
만일에 공을 세운 사람이 노예도 아니고 죄수도 아니라면? 그럴 때는 땅을 주거나 벼슬을 주거나 그랬을 것이다. 보상은 의무의 면제가 아니라
징벌의 면제여야 하고, 그것이 아니면 권리의 확대여야 한다. 그런데 군복무가 징벌이 아니라면 면제해 줄 수가 없다. 병역 면제나 특혜를 권리의
확대라고 보기도 어렵다. 병역 면제를 보상의 수단으로 제시함으로써 신성한 국민의 의무인 군 복무를 징벌인 양 무의식적으로 의식화하는 실수는
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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