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가 된 詩

[스크랩] [고재종] 동안거

문근영 2011. 2. 16. 10:39

동안거(冬安居)

 

  고 재 종

 

 

목화송이 같은 눈이 수북수북 쌓이는 밤이다

 

이런 밤, 가마솥에 포근포근한 밤고구마를 쪄내고

장광에 나가 시린 동치미를 쪼개오는 여인이 있었다

 

이런 밤엔 윗길 아랫길 다 끊겨도

강변 미루나무는 무장무장 하늘로 길을 세우리

 

 

 

 

 

 

 

 

 

 

눈은 길을 끊는다. 집과 집 사이, 마을과 마을 사이로 난 모든 길을 지운다. 함부로 소통하려

하지 마라. 통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더냐. 도저한 단절이다. 우리는 눈의 감옥 속에 유폐

되어 비로소 안거에 이르게 된다. 가마솥에 쪄낸 고구마와 속을 개운하게 씻어 내리는 동치미

국물을 내오는 여인에 대한 그리움. 이 그리움 위로도 눈은 푹푹 내린다. 지붕 위에 두툼한 눈

이불 끌어 덮고 굴뚝만 간신히 내어놓은 채 잠을 자는 집, 안에서 무얼 하는지 굴뚝 연기만 중

얼중얼 알아들을 수 없는 잠꼬대처럼 피어오르는 겨울 집. 그 속에 들어 나는 하늘로 가는 길을

생각할 것이다. 눈 속에서 붉어진다는 어느 먼 산중의 단단한 열매 하나와 속살이 벗겨져 나온

가지에 남은 산토끼 시린 이빨 자국이라도 더듬어볼 것이다. <손택수 . 시인>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꽃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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