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발바닥에 이마 대고
박재삼
一년 五개월 짜리
상규의 잠자는 발바닥
골목 안과 뜰 안을 종일
위험하게 잘도 걸어다녔구나.
발바닥 밑으로 커다란 해를 넘긴
어여쁘디 어여쁜 발아.
돌자갈 깔린 길보다도 험한
이 애비의 이마를 한번 밟아 다오.
때 안 타는 연한 발아.
햇살이 겨울 가지에 불을 켜듯, 구름장을 뚫고나온 빗방울이 둥글게 오므려쥔 손으로 연못물을
톡톡톡 두드려주듯, 어여쁘디 어여쁜 발아, 지상의 모든 골목과 뜰을 사뿐히 디뎌다오, 네 한 걸음
한 걸음 속에서 세상은 다시 태어나고, 네 한 걸음 한 걸음 속에서 굴곡 많은 아비의 이마에도 연한
햇발은 돋아나려니, 떨어지는 이파리가 추워 떠는 벌레의 설잠 위로 이불을 끌어당겨주는 한 해의
끝자락, 네 발바닥 밑으로 지는 해를 오늘 내가 본다, 지상에 없는 빛깔로 어둔 이마를 부드럽게 짚
고가는 저 일몰! 밟히면 밟힐수록 수혈이라도 받은 듯 생생해지는 붉은 발자국. <손택수·시인>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꽃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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