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가 된 詩

[스크랩] [도종환] 산경

문근영 2010. 12. 31. 08:23

산경

 

도종환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 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 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 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시집『해인으로 가는 길』 (문학동네, 2006)

 

 

▶도종환=1954년 충북 청주 출생. 1980년대 초 동인지 '분단시대'로 작품 활동. 시집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등.

 

가끔 모든 걸 손놓고 앉아 아무 말도 안 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세상과 더불어 살면서 온종일 한 마디도 안 하고 산다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더구나 말로 먹고 살아가는 나로서는 산방에 든 시인의 처지가 무척 부럽기만 하다. 무던한 산 곁에 또 하나의 작은 산으로 우두커니 앉아 있는 시인의 모습이야 말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도 가끔은 자신과 마주앉아 사물과 풍경과 시간까지도 나를 관통해 흘러가도록 그냥 풀어둬 보자. 마음속에 들끓던 기쁨과 슬픔과 분노와 미움의 이 모든 감정들 또한 지나가리니. 고증식·시인

 

- 국제신문[아침의 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우가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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