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 게장
지 영 환(1967~ )
1
간장처럼 짠 새벽을 끓여
게장을 만드는 어머니
나는 그 어머니의 단지를 쉽사리 열어
보지 못한다
나는 간장처럼 캄캄한 아랫목에서
어린 게처럼 뒤척거리고
2
게들이 모두 잠수하는 정오
대청마루에 어머니는 왜 옆으로만,
주무시나 방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햇볕에
등은 딱딱하게 말라가고
뼛속이 비어 가는 시간에
한말의 한학자 윤우당은 "창자 없는 게가 참으로 부럽구나/한평생 창자 끓는 시름을
모르니"라고 읊었다. '無腸公子(무장공자)'라는 게의 점잖은 별칭을 두고 읊은 시인데,
게장에 한번이라도 밥을 비벼 먹어 본 적이 있다면 고개를 흔들 것이다. 작게 퇴화해
잘 보이지 않지만 게에게도 분명 창자가 있다. 그러니 단장의 아픔이 게라고 없을 리
있겠는가. 간장 같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뼈를 비우고도 등딱지마저 밥그릇으로 내어
주며 말없이 등골을 빨리는 삶이 여기 있다. <손택수 . 시인>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꽃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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