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가 된 詩

[손진은] 어느 생애

문근영 2010. 5. 18. 18:35

어느 생애


손진은

 

 


  

한 농부가 논을 갈아엎는다


머얼리서 물무늬 얼비치며 다가오는 소의 그림자


빠른 걸음으로 무논을 쟁기가 가로질러 가고


순간, 소리의 여울 이루어 반란하는 개구리 울음


나는 숨죽여 지켜본다


휘뚝휘뚝 지나가는 쟁깃날 너머로


분홍빛 등불을 켜든 풀꽃의 섬뜩한 아름다움이


머리 잘린 채 넘어지고


누군가, 떠올릴 수 없는 빛나는 한 생애가


흙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몇 바지개나 될 것인지


그들 죽음 안타까워 더욱 거세어지는 개구리 울음


개구리 울음이


넘어지는 풀꽃의 혼 이끌고

  

그것을 보는 내 슬픔마저 이끌어


봄 하룻날


풀꽃의 혼, 개구리 울음, 내 슬픔이 다 슬려


아지랑이로 떠돌고 있는 것을.


 

 


-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민음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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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주어진 일상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면 그것이 곧 정답이다. 개구리가 울음으로 밝히는 풀꽃들의 죽음도 새로운 탄생을 위한 아픔이다. 죽음과 탄생이 교차해가는 봄날에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떠도는 아지랑이로 피어난다.


더 큰 힘에 의해 지워지는 작은 힘을 생각한다. 봄이면 약육강식에 의한 자연의 섭리가 눈에 띈다. 그것은 먹이 사슬에 의한 자연스런 현상이며 태고 이래로 규율되어 온 법칙이다. 그런데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생태계를 인위적으로 파괴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것이 복원되려면 지나온 세월만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들은 알까. -

 

강영환·시인 / 국제신문 [아침의 시] 

  입력: 2010.05.16 21

 

 

** 손진은 시인

1960년 경주 안강 출생.

시집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대구시협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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