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忍冬)잎
김 춘 수
눈 속에서 초겨울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다.
서울 근교(近郊)에서는 보지 못한
꽁지가 하얀 작은 새가
그것을 쪼아 먹고 있다.
월동(越冬)하는 인동(忍冬)잎 빛깔이
이루지 못한 인간(人間)의 꿈보다
더욱 슬프다.
눈 속에서 익어가는 초겨울의 붉은 열매, 그것을 쪼아 먹는 작은 새, 그리하여 풍경이라
는 잔상 위에 모이는 사물은 하잘것없는 존재들이다. 시 속에 감추어진 뜻을 굳이 진술
하라면, 겨울이라는 실존을 함께 견디는 뭇 생명의 슬픔일 테지만, 이 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이 저의 육체성을 향유한다. 시는 제시되는 풍경으로서 전체이며, 그 잔상이며,
느낌이다. 설명 받지 않아도 자체가 실감인 시의 세계를 독자들은 이런 작품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김명인 . 시인>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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