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고무신
이주희
햇살 다냥한 댓돌 위에서
앞뒤가 고르게 닳은 왼쪽 신발과
뒤축만 닳은 미농지처럼 얄팍해진 오른쪽 신발이
금실 좋은 부부처럼 시설거리고 있다
단장(短杖)과 짝을 이룬 하얀 고무신은
엘리베이터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아버지의 40년 지기
따로 노는 물지게처럼 다리와 의족이 어그러져
무릎을 펴고 구부리기가 힘겨운 아버지는
양복차림에도 고무신을 신는다
오른손의 단장이 앞장서 바닥을 짚으면
온몸을 실은 오른발 뒤축이 따라 딛고
꽃잎에 앉는 나비처럼 앞축이 살포시 놓인다
왼발도 뒤쫓아와 수평을 이룬다
단장 손잡이만큼이나 굽은 양어깨를 품은 채
바람 가득 싣고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댓돌 위 아버지의 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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