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가 된 詩

시가 있는 풍경(서울일보) 주천장 가는 날 / 서봉교

문근영 2009. 5. 11. 10:47

가 있는 풍경

 

 

 

 

 

                    

주천장 가는 날

                              서 봉교

 

고추 몇 근 머리에 인 엄마 손잡고

시오리 길 오일장 가는 날

푸진 손 발걸음에 들뜬 마음

흙먼지 나는 신작로를 걸으면

두릉 강가의 방앗간 앞에서

중방을 지나 명마동 걸 널 때 나룻배 타고

북적북적 한 장터 입구에 오면

서로 고추사려는 장사꾼들의 居間 질

 

고추를 팔아야 장을 보지

적당한 정선상회에 팔아 버리고 후덥지근한 장터 한 바퀴 돌으면

엄마냄새는 누런 종이 쪼가리에 싸인 고등어 내음

5일 만에 왔으니 살 것도 많겠지만

고무신 몇 켤래 난전(亂廛)에서 고르다 놓아 버리고

왕방울 눈깔사탕 하나면 만족하는 것을

 

우시장 간 아부지 오기 전에 먼저 집을 향하고

돌아오는 길 구누터에서

사주지도 못할 장난감 사달라고 떼를 쓰던 시절

어린 송아지 사오시던 큰아버지가

데려가서 백오십 원짜리 자동차를 사주고

어미 떨어진 송아지 뒤를 제방堤防 둑 따라 걷던

멀리 다래산 산머리는 시멘트회사에서 상고머리로 깎아 버리고

엄마 손 잡고 다니던 비포장 길

이제는 참 오래 되었다

 

승용차 놓고

어머니랑 걸어서 다시 가고 싶은 주천 5일장

 

 

  

                        *주천장: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의 지명이며 지금도 주천 5일장이 열림.

 

 

 

◆ 시 읽기 ◆

 고무신 고르다 놓아 버리고, 왕방울 눈깔사탕 하나면 만족하던 주천 오일장, 후덥지근한 장터를 한 바퀴 돌고 난 엄마냄새는 누런 종이 쪼가리에 싸인 고등어 내음, 어린 송아지 사오시던 큰아버지가 사주지도 못할 장난감 사달라고 떼를 쓰는 어린조카를 데려가서 백오십 원짜리 자동차를 사주고 어미 떨어진 송아지 뒤를 제방堤防 둑 따라 걷던  주천장 가는 길 .......

 유년시절 시골 장을 따라가 본 경험이 없었던 사람에게도 고추 몇 근 머리에 인 엄마의 손을 잡고 시오리 길을 따라 나서던 그 설렘과 그 정겹고 순박한 풍경 속으로 들어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참 자상한 詩다. 어렵게 쓰지 않고, 꾸밈이 없어 편안한 詩다. 순박한 詩다.

 허리 꼬부라진 어머니와 손을 꼭 잡고, 오일장이 서는 시골길을 되도록 천천히 걸어서 가보고 싶은 봄날이다.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