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풍경
주천장 가는 날
서 봉교
고추 몇 근 머리에 인 엄마 손잡고
시오리 길 오일장 가는 날
푸진 손 발걸음에 들뜬 마음
흙먼지 나는 신작로를 걸으면
두릉 강가의 방앗간 앞에서
중방을 지나 명마동 걸 널 때 나룻배 타고
북적북적 한 장터 입구에 오면
서로 고추사려는 장사꾼들의 居間 질
고추를 팔아야 장을 보지
적당한 정선상회에 팔아 버리고 후덥지근한 장터 한 바퀴 돌으면
엄마냄새는 누런 종이 쪼가리에 싸인 고등어 내음
5일 만에 왔으니 살 것도 많겠지만
고무신 몇 켤래 난전(亂廛)에서 고르다 놓아 버리고
왕방울 눈깔사탕 하나면 만족하는 것을
우시장 간 아부지 오기 전에 먼저 집을 향하고
돌아오는 길 구누터에서
사주지도 못할 장난감 사달라고 떼를 쓰던 시절
어린 송아지 사오시던 큰아버지가
데려가서 백오십 원짜리 자동차를 사주고
어미 떨어진 송아지 뒤를 제방堤防 둑 따라 걷던 길
멀리 다래산 산머리는 시멘트회사에서 상고머리로 깎아 버리고
엄마 손 잡고 다니던 비포장 길
이제는 참 오래 되었다
승용차 놓고
어머니랑 걸어서 다시 가고 싶은 주천 5일장
*주천장: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의 지명이며 지금도 주천 5일장이 열림.
◆ 시 읽기 ◆
고무신 고르다 놓아 버리고, 왕방울 눈깔사탕 하나면 만족하던 주천 오일장, 후덥지근한 장터를 한 바퀴 돌고 난 엄마냄새는 누런 종이 쪼가리에 싸인 고등어 내음, 어린 송아지 사오시던 큰아버지가 사주지도 못할 장난감 사달라고 떼를 쓰는 어린조카를 데려가서 백오십 원짜리 자동차를 사주고 어미 떨어진 송아지 뒤를 제방堤防 둑 따라 걷던 주천장 가는 길 .......
유년시절 시골 장을 따라가 본 경험이 없었던 사람에게도 고추 몇 근 머리에 인 엄마의 손을 잡고 시오리 길을 따라 나서던 그 설렘과 그 정겹고 순박한 풍경 속으로 들어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참 자상한 詩다. 어렵게 쓰지 않고, 꾸밈이 없어 편안한 詩다. 순박한 詩다.
허리 꼬부라진 어머니와 손을 꼭 잡고, 오일장이 서는 시골길을 되도록 천천히 걸어서 가보고 싶은 봄날이다.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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