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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서울일보) 아줌마, 아내 /복효근

문근영 2009. 5. 11. 10:42

    詩가 있는 풍경

 

 

 

 

아줌마, 아내                                   

복효근  

 

 

나 혼자 심심할 것 같다고

병실 바닥에 신문지를 펼쳐놓고

한 봉다리 마늘을 가지고 와선

TV 보며 마늘을 까는 여자,

배울 만큼 배웠다는 여자가

선생까지 한다는 여자가

미간을 찌뿌리고 나가는 간호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뭐, 어때 하면서 마늘을 깐다

산중에 곰이 제 배설물 냄새로 제 영역을 표시하듯이

그 역한 마늘 냄새는

내 환부에 새겨 넣는 영역 표시 같아서

저 곰 같은 여자의 냄새는그 어떤 약보다

그 무슨 항생제보다

독하고 또 용할 것도 같아서

제 곁에 내 곁에 백 년 동안은

아무도, 암껏도 얼씬도 못할 것만 같았다

 

 

시 읽기 

 병실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역한 냄새를 풍기며 마늘을 까고 있는 아내는 아줌마다. 설레고 두근거리게 하던 여자, 수줍고 겁 많던 여자가 아니라 이제는 곰 같은 아내이고 당당한 아줌마다.

배울 만큼 배우고 선생까지 한다는 여자가 체면이나 교양을 버리고 병실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TV를 보면서 마늘을 까고 있는 아내는 편안하고 믿음직스럽다.

 집안의 기둥인 남편의 병고가 어찌 안타깝고 불안하지 않을까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처럼 대처해주는 아내가 고마운 것이다. 호들갑스럽지 않은 아내의 모습이 한없이 사랑스럽고 든든해서 백 년 동안은 아무도 암 것도 끼어들 수 없을 것 같은 부부애를 느끼는 것이다. 지금 병실을 가득채운 역한 마늘냄새는 독한 항생제보다 더 효과적인 치료약이다.

환부에 새겨 넣는 아내의 영역표시....! 투병중인 환자에게 이보다 더 든든한 명약이 있을까?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