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가 된 詩

시가 있는 풍경(서울일보) 거미집 / 원무현

문근영 2009. 5. 11. 10:43

                詩가 있는 풍경

 

 

 

 

 

 

거미집 

                원무현

 

누가 폐가의 찢어진 문풍지라 하는가

금세라도 파편이 쏟아질 것만 같은 금간 거울이라 하는가

벽도 지붕도 없이 활짝 열려 있는 집

알뜰살뜰 가꾸니 허공도 명당이다

낭하와 처마사이 투명한 집 한 채

아침저녁으로 이슬이 놀러와서는 눌러 앉고

가끔 물잠자리나 배추흰나비가 귀한 목숨을 맡기기도 하는 집

이 집 너머 속이 훤한 물길을 따라가면

할머니와 아버지가 삶을 내려놓은 집이 있다

달빛 아래 오롯이 앉은 벙어리어머니가

침묵을 풀어내 적요寂寥를 수놓던 집이 있다

내 유년의 가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액자가 걸린

 

 

 

시 읽기

  시인의 눈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고, 시인의 귀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폐가의 찢어진 문풍지처럼 얼기설기 허공에 걸려있는 거미집 너머로 속이 훤히 보이는 길을 따라갈 수 있는 것도 시인이요. 거미집을 보며 할머니 할아버지가 삶을 내려놓은 집, 유년의 가계를 간직하고 있는 그 집을 생각해 낼 수 있는 것도 시인이다.

 보이는 대로 걷어버리게 되는 거미줄,....시인이 아니라면 거미집을 보며 달빛 아래 오롯이 앉아 침묵을 풀어내 적요寂寥를 수놓던 벙어리어머니의 모습과 유년의 기억을 고스란히 일깨워낼 수 있을까?

 낭하와 처마 사이 투명한 거미집에는 아침저녁으로 이슬이 놀러와서는 눌러 앉고 가끔 물잠자리나 배추흰나비가 귀한 목숨을 맡기기도 한다. 거미집은 벽도 지붕도 없이 활짝 열려 있는 집이므로 채울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으며, 어디로든 통해있어 마냥 자유롭다.

 힘든 경제 한파를 겪고 있는 요즈음 위축되어 있는 우리 모두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놓고 따스한 봄볕이라도 가득 들여 놓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힘들고 보잘 것 없는 삶이라할지라도  벽도 지붕도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마음의 집 한 채 지어서  명당이 되도록 잘 가꾸어 간다면 고단한 우리의 삶이 좀 더 윤택하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허공도 알뜰살뜰 가꾸니 명당이 된다는 거미집처럼.....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