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풍경
한 호흡
문태준
꽃이 피고 지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제 몸을 울려 꽃을 피워내고
피어나 꽃은 한 번 더 울고
꽃잎을 떨어트려 버리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꽃나무에게도 뻘처럼 펼쳐진 허파가 있어
썰물이 왔다가 가버리는 한 호흡
바람에 차르르 키를 한번 흔들어 보이는 한 호흡
예순 갑자를 돌아 나온 아버지처럼
그 홍역 같은 삶을 한 호흡이라 부르자
◆ 시 읽기 ◆
우리는 태어날 때 날숨으로 시작하고 날숨으로 생명을 마감한다. 살아 있는 동안 모든 생리적, 행태적 현상은 호흡에 따라 달라지며 호흡은 생명을 유지하고 에너지를 얻는 필수 과정이자 마음을 조율하는 끈이다. 어떻게 호흡하느냐에 따라서 몸과 마음의 상태가 달라지고 삶이 달라지는 것이다.
한 호흡 속에 꽃이 피고 지고, 썰물이 왔다 간다. 한 호흡 속에 예순 갑자를 돌아온 아버지의 홍역 같은 삶이 들어 있다는 진리의 공간적, 시간적 통찰이다.
시간(時間)이란 時와 時 사이를 일컬음이고, 공간(空間)이란 空과 空 사이를 일컬음이 아니던가? 時와 空은 찰라의 연속일 뿐이다. 한 호흡의 찰라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마음, 어떤 자세로 애초에 부여받은 오욕칠정(五慾七情)의 본능을 다스리며 홍역 같은 갈등의 삶을 치룰 것인가?
시인은 모든 생명체의 모든 삶이 한 호흡에 달린 것이니 너무 조급하게 아옹다옹 하지 말자라고 솔직하고 담백한 시구로 잠언하고 있는 것이다.
* 오욕(五慾) : 사람의 5가지 욕심 - 재물욕, 명예욕, 식욕, 수면욕, 색욕.
* 칠정(七情) : 사람의 7가지 감정 -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애(愛), 오(惡), 욕(慾).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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