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
흰소를 타고 / 송지원
- 이중섭의 일기
한밤을 새고 나면 절벽 같은 아침 온다
안개에 젖은 생각 무지개로 걸어도
화판 속 내 아이들은 웃을 줄을 모른다.
사부랑한 삶의 고리 다부지게 조여 본다
직강으로 쏟는 햇살 또 튕겨져 나가는 꿈
그리움 건너지 못한 바다 끌어안고 눕는데
거미보다 낮은 몸에 까마귀 떼 날아온다.
아이들 울음소리 경문처럼 박혀 와서
늘품 진 황소를 타고 무명으로 떠나는 길
어디로 갈 것인가 흰 뼈대만 있는 길을
천근의 무게 업고 뚜벅뚜벅 걸어가면
마침내 또 다른 문이 어둠속에 열린다.
[당선소감]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이순근 선생님을 모시고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노는 꿈을 꾸었다. 유난히 밝으신 모습에 가슴까지 포근하였는데 이것은 아마도 이 당선의 기쁨을 알리기 위한 전초였나 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가슴을 헐어내는 일이다. 그 자리에 바람을 들이고 그 바람에게 내 정신의 뼈와 살을 입혀 세상에 내보내는 것이다.
그것이 온전하든 그렇지 않든 오롯이 내 몫이며 내 분신으로 남는다. 지금까지 시조라는 분신을 키우며 살았던 것은 그 절제미에 반해서 이었을까?
그 역할을 담당하셨던 김환식 선생님, 글의 바른길을 안내하셨던 고 이순근 선생님 항상 젖은 눈으로 지켜보았던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문학은 인간의 이해부터 비롯된다고 가르침을 주신 유한근 교수님과 문예창작과 교수님들 그리고 이 기쁨을 함께하는 학우들에게 작은 희망의 씨앗이 되길 소망하며 아직도 먼 길 달려야 하는 신발에 징을 박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송지원(본명 송금례): 1964년 충남 출생.2002 월드컵시조백일장 장원.한밭 시조 백일장 차상. 서울 문화예술대학교 재학.
[심사평]
17명의 작품 71편이 예심을 거쳐 최종심사 대상이 됐다. 여기서 다시 당선권으로 압축된 작품은 여섯 편. ‘감은사지에 와서’ ‘반구대 기행’은 형식과 시적 수사에서 평가받기에 충분했으나 ‘후학들 눈 틔운 포은 학이 되어 날아갔고’(반구대 기행)나 ‘남은 생, 지척에 모시는 시종이나 될까보다’(감은사지에 와서)와 같은 낡은 표현들이 작품의 완성도를 크게 떨어뜨렸다.
‘새소리 귀에 젖다’의 경우 ‘해 진다 서글퍼 않고, 달 뜬다 갈채도 없이’(새소리 귀에 젖다)와 같은 평이한 표현들이 시의 균형을 깨트리고 있었고, ‘가는 정 오는 정’의 경우에는 작품을 다루는 솜씨가 부분적으로 뛰어났으나 당선작으로 밀기에는 정서의 일관성이 부족해 보였다. 같은 이의 작품 ‘五色川 訃音’ 역시 소재의 특수성에 비해 성급하게 다룬 점이 무엇보다도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남은 두 작품은 일장일단이 있었다. 우선 ‘칼 가는 사람’은 손색이 없을만큼 구성이 탄탄하고 전개가 활달했다. 또 아버지를 등장시켜 감성적 밀도를 높이는데 성공을 거두고 있었으나 ‘푸르죽죽 거친 손에 때 묻은 낙엽 몇 장’과 같은 표현은 첫수 전체의 구도상의 문제로 지적됐다.
당선작 ‘흰 소를 타고’는 표현과 구성면에서 앞선 작품들에 비해 나무랄 데가 없었다. 특히 넷째 수의 생동감 넘치는 표현은 응모자의 시적 신뢰를 갖게 했다. 그러나 ‘칼’(칼 가는 사람)의 참신성에 비해 ‘이중섭’(흰 소를 타고)이라는 소재가 너무 흔하고 식상한 것이어서 소재의 참신성이냐 완성도냐를 두고 최종 결정을 망설이게 했지만 결국 ‘흰 소를 타고’를 당선작으로 뽑은 것은 응모자의 다른 작품들도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인으로서 성장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커보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앞으로 소재의 다양성과 표현의 섬세함을 더 한다면 분명 우리 곁에서 기억에 남을 좋은 시인 하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 심사위원 유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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