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2009 신춘문예 부산일보 시조 당선작

문근영 2009. 1. 6. 19:55

 

[2009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그해 겨울 강구항
/ 박미자


극(劇) 끝난 화면처럼 다 쓸린 해안선 따라
더 이상 참지 못해 안부 묻는 비릿한 초설(初雪)
복숭뼈 아려오도록 길을 모두 감춘다


흰 이빨 드러낸 파도 밤새 기침 해대고
사연 낚는, 집어등 즐비한 환한 횟집
화끈히 불붙는 소주로 동파의 밤 데워간다


가출한 갈매기 떼 돌아오는 아침이다
풍향계 돌려대는 바람은 신선하고
풀리는 뿌연 입김에 인화되는 흑백 한 컷

 

 

[당선소감]
소띠해는 분명 희망입니다


코끝이 싸한 삶을 연출하던 무대의 바다. 납작하게 엎드린 한 어촌을 집어삼킬 듯, 산만큼이나 배가 불러오던 아침해.


손 마디마디 옹이 진 늙은 어부는 찬바람 마시며 아직도 찢어진 그물코를 꿰매고 있을까. 아득하지만 생생한 빛바랜 흑백 필름 몇 컷을 되돌려 보면 아픔으로 잘려나간 NG 없는 단편적인 부분들, 아 아버지…. 이젠 고향엔 가지 않으리.


춥다. 만나는 사람마다 힘들고 어렵다고들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래도 살아 볼 만한 이 땅이 아닌가. 정녕 우리를 춥게 하는 건 삶의 구차함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돋아나는 불신의 독소일 것이다.


정신없이 돌아간 묵은해의 몇 달 동안 따뜻하게 손 내밀어 준 여러 지인님, 학부모님, 늘 부모님을 대신한 큰 언니, 고맙습니다. 그리고 극한 상황에서도 제 역할을 잘해 준 다혜 병곤아! 우리 모두 아빠의 빠른 쾌유를 빌자.


문학의 허기 앞에 목을 축여 준 울산 남부도서관 문예창작반 선생님, '문학' '글쌈' 선후배님, 무엇보다 설익은 작품을 선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정진의 자세 잃지 않겠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제일 먼저 당선 소식을 전해 주신 기자님! 소띠해는 분명 희망입니다.

 

* 박미자: 1965년 경북 영덕 출생. 제32회 샘터시조상 장원. 2007년 유심시조백일장 장원.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2008년 6월 장원. 제2회 좋은생각 생활문예대상 금상 수상. 한국방송통신대학 유아교육과 졸업. 현재 한우리 독서·논술 지도사


[심사평]

현대시조 100년이 지난 오늘 시조가 현대시의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음은 금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응모작품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결코 자유시에 못지않은 비유와 상징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높은 수준이었다.


최종 당선권으로 압축된 작품은 천강래 '노고단, 어느 날', 김상민 '쇠똥구리', 전해수 '겨울 꽃밭', 변경서 '써래질하는 사내', 이태호 '그 해 달월역', 배승우 '봉숭아', 나동광 '무화과나무 아래서', 조명수 '옹관 속으로', 송필국 '낡음에 대한 경의', 박해성 '그리운 사과에게' 그리고 당선작으로 뽑힌 박미자 씨의 '그해 겨울 강구항'이었다.


이 중 김상민, 이태호, 전해수, 변경서, 나동광, 송필국 씨의 작품이 완성도 면에서 제외되었고, 배승우, 조명수 씨의 작품 역시 음보의 불확실성이 지적되었다. 마지막으로 천강래 '노고단, 어느 날', 박해성의 '그리운 사과에게', 박미자 '그해 겨울 강구항'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시적 성숙도가 다른 작품들에 월등 앞서 있었다. 그러나 박해성 씨와 천강래 씨의 경우 안정감은 있었으나 시를 끌고 가는 힘이 당선작에 비해 다소 부족했다.


당선작 '그해 겨울 강구항'은 다소 언어의 상충성이 없지는 않았으나 시어 선택이 다른 응모자의 작품들보다 신선하고 첫 수와 셋째 수 종장 표현을 현대시조의 시학적 관점에서 높이 평가했다. 당선자에게 축하와 함께 깊은 신뢰를 보낸다. / 심사위원 유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