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2009 신춘문예 매일신문 시조 당선작

문근영 2009. 1. 6. 19:53

 

[2009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
우도댁
/ 김정숙


다단조로 내리던 게릴라성 폭우도 멎은
성산포와 우도사이 감청색 바닷길에
부르튼 뒤축을 끌며 도항선이 멀어져.


이 섬에도 저 섬에도 다리 뻗고 오르지 못해
선잠을 자다가도 붉게 일어나는 아침
어떻게 흘러온 길을, 제 무릎만 치는고.


눈 뜨면 부서지는 것쯤 타고난 팔자려니
젖었다가 마르고 말랐다가 또 젖는
짭짤한 물방울들에 씻기다만 저 생애.


 

[당선소감]

  바삭바삭 겨울바람에 제 몸 말리는 억새를 봅니다. 얼기설기 구름 띄운 하늘에 대고 연방 고개를 끄덕이는 억새무리들. 점점 깊어가는 겨울 속으로 맨 몸을 맡기면서도 씨앗 하난 허투루 날리지 않습니다.


휴대전화 통화권 이탈지역인 한라산 중턱 억새밭에서 당선소식을 들었습니다. 깜빡깜빡 끊기는 <대구매일신문> 기자님의 목소리에 몇 번씩 되물으면서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란 이런 것인가 봅니다. 전화를 끊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억새밭을 내려와 곰곰 생각했습니다. 글쓰기 5년, 시조쓰기 4년…아직 여물지 못한 나의 문학적 소출이 시조의 들판을 어지럽히게 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습니다.


  졸작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민족 고유장르인 시조도약의 현장에서 열심히 벽돌을 날라달라는 주문으로 여기겠습니다. 일요일저녁마다 함께 문학의 텃밭을 일구는 반달동인들, 컴퓨터 앞에 앉을 때마다 늘 따뜻한 방석을 펴주는 남편과 아이들, 저를 아는 모든 분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제 푸른 시절 삶의 모태가 되어주시다가 지난여름 홀연히 먼길을 가신 시어머님께 당선작 <우도댁>을 바칩니다.


* 김정숙: 1960년생. 제주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제주 농업기술원 근무

 

[심사평]

시조의 품격은 정형이 빚는 정제미와 가락이 이끌어내는 긴장미에 의해서 정해진다. 형식이 주는 절제미란 언어 뒤에 숨겨진 공간의 여유와 어우러질 때 비로소 하나의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결코 물리적인 언어의 분절이나 과도한 시상의 나열로는 감동에 이르게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심사의 기준 또한 이런 맥락에서 접근하였다.


전체적으로 이번 응모작들의 수준은 상당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고심 끝에 마지막까지 남은 네 편의 작품은 쉽게 순위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각기 장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겨울 강구항」 「우도 댁」과 같은 '가슴으로 쓴 시'와 「겨울, 랩소디」와 「몽자류 소설처럼」과 같은 '머리로 쓴 시'가 곧 그것이다.


박미자의 「겨울 강구항」은 발상과 언어의 구사능력이 돋보였으나 수식어의 선택과 종장처리가 미숙하였고 박해성의 「몽자류 소설처럼」은 풍부한 이미지와 시상의 범위에 호감이 갔으나 주제의 통일성을 잃은 아쉬움이 있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황윤태의 「겨울, 랩소디」와 김정숙의 「우도 댁」을 두고는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겨울, 랩소디」는 투명한 언어감각과 시상을 전개하는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으나 지나친 작위성으로 인해 이미지의 선명도가 떨어지는 흠이 아쉬웠다.


그에 비해 당선작으로 뽑은 「우도 댁」은 '우도'라는 섬의 태생적 한계를 온몸으로 이겨내는 한 여인의 아픈 삶을 리얼하게 형상화시켜 완성도를 높인 작품이다. 비록 그 처방까지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섬과 바다와 우도 댁과 시인을 일체화시킨 체험적 진솔성과 절망을 극복하는 따뜻한 시선이 신뢰를 갖게 하였다.


좋은 시조는 사색과 사유를 넘어 통찰에 이른 작품이라고 보았을 때 앞으로 당선자는 이를 과제로 삼아 그 신뢰를 채워주기를 기대한다.


- 민병도(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