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2009 신춘문예 조선일보 동시 당선작

문근영 2009. 1. 6. 19:11

 

     기분좋은 날 - 이수경

4교시 체육시간에 이어달리기 하다가

옆에 뛰던 현태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무릎에 불등걸 철썩 붙는 것 같더니

슬며시 번져 나오던 피가 비명을 지르네

새파랗게 놀라 운동장에 털퍼덕 앉았는데

“어머, 어머, 어떡해”

여자애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배꽃 같은 선생님이 하얗게 달려오고


“수리수리 마하수리 호리호리 퐁퐁 얍

이제 마법 걸려서 하나도 안 아프다”

부반장 장효진, 내 무릎에 마법 걸고

“업혀, 어서 업혀, 양호실 얼른 가자”

맑은 향내 솔솔 나는 선생님 등 주시고

내가 좋아하는 송채원이 눈물 훔치고

영윤이 손바닥으로 부채질 해주고

다해가 물 떠와서 조심조심 먹여 주고

윤지가 헐레벌떡 약 상자 가져 오니

“야, 고것 다치고 아주 황제다 황제”

저만치서 권민호가 부러운 듯 외치는데

다치고 기분 좋아보긴 난생 처음이었다

 

[신춘문예 동시 부분- 당선소감] "7년간 글쓰기 공부, 행복했습니다"
 

지난 7년간 노박이로 밤을 지새우며 글쓰기를 공부했습니다. 그 사이 행복했습니다. 골목길에서 꽃눈개비 같은 아이들이 바람에 나부끼듯 놉니다. 함성소리, 웃음소리, 친구를 부르는소리가 하늘에 가득합니다. 그 속에 환하게 웃는 아이, 수줍은 아이, 슬프고 아픈 아이, 배고프고 힘든 아이, 절망하고 외로운 아이들의 마음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왁자그르르 나에게 몰려와 내 이야기 좀 들어달라며 재잘재잘 이야기합니다. 몇은 책상을 두들기며 서둘러 쓰라고 재촉하기도 하고, 소곤소곤 속삭이며 비밀이야기를 전해 주기도 합니다. 그랬습니다. 몸은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나의 속에는 아이가 살고 있고, 그래서 나는 아이들의 친구입니다. 나의 동시는 아이인 나의 이야기이고, 세상 모든 아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시 공부를 통해 나를 여기까지 이르도록 이끌어 주신 윤희상 시인님께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엄마의 동시를 읽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던 아이와 따뜻한 응원의 눈빛을 보내주던 남편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기꺼이 손을 잡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고맙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초콜릿을 내밀던 정훈이, 학원가는 길에 힘들다고 눈물 훔치던 주영이, 친구에게 맞았다고 화단 옆에 앉아 울던 현태, 몸이 많이 아파 수술을 앞둔 소희야, 힘내. 그리고 모든 아이들아 힘내! 너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희망이야. 용기를 잃지 마. 사랑해.


 1967년 경남 산청 출생


 성덕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신춘문예 동시 부분- 심사평] '애송동시' 영향 무려 1456편이나 응모
이준관·아동문학가
 

‘한국인의 애송동시’를 조선일보에서 연재한 영향을 받아서인지 응모작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무려 1456편이나 되는 많은 응모작들을 보면서 동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응모 편수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표현 기법이 세련된, 수준 높은 작품이 많았다. 응모작들을 꼼꼼히 읽고 신혜정, 정성수, 김경련, 정가람, 이상근, 이상협, 문신, 김영, 이수경의 작품을 가려냈다.

그 가운데 다시 검토를 거듭하여 다섯 사람의 작품을 골라냈다. 이상근의 ‘설거지’는 깔끔하게 완성되긴 했으나 참신성이 떨어졌다. 이상협의 ‘조율’은 메시지는 분명하지만 너무 관념적이었다. 문신의 ‘쬐끄만 게’는 중의적 표현의 묘미를 잘 살려 동심을 절묘하게 표현한 좋은 작품이었으나 너무 소품이었다. 김영의 ‘외할머니 밥상’은 외할머니의 뜨거운 사랑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었지만 함께 보내온 작품의 수준이 약했다. 이수경의 ‘기분 좋은 날’은 산문적인 면이 걸리긴 했지만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결이 녹아 있는 건강한 동심을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그려낸 점이 좋았다.

어려울 때 서로 위로해 주는 따스한 동심을 진솔하게 표현한 동시로서 그 흐뭇한 동심이 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가슴 훈훈한 작품이었다. 함께 보내온 다른 작품들도 재미와 동심의 여운을 주는 수준작이라서 역량에 신뢰가 갔다. 단 한 명을 뽑아야 하기 때문에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던 많은 응모자들에게 미안함과 함께 격려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