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2009 신춘문예 매일신문 동시 당선작

문근영 2009. 1. 6. 17:23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털실감기

                           김영식



나는 실을 풀고
할머닌 실을 감고

호롱불빛이 감기고
부엉이소리가 감기고

사과처럼 둥글어지는 실타래

나는 지겨워져 빨리 풀고
할머닌 엉킨다며 천천히 감고

슬슬 하품이 감기고
펄펄 함박눈이 감기고

어느새 호박처럼 커진 실타래

할머닌 뽀송뽀송 나를 감고
나는 도란도란 할머닐 풀고

 

 

[당선소감]
- 바람이 말을 걸어오다 -
골목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돌아보니 바람이 살짝 덧니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흰 손을 잡고 교차로가 훤히 내다보이는 커피숍에 마주앉았다. 오후는 강물처럼 흘러가고 사람들은 거리를 부유하고 있었다. 삶은 이처럼 타인의 얼굴을 하고 예기치 못했던 순간에 불현듯 나를 찾아오는 것이었다.
‘아! 우린 왜 이제야 만나게 되었을까요?’
그녀의 목덜미 위로 커피향이 안개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저 아찔한 바람의 머리에 새털구름 한 조각을 올려놓을까? 아니면 구절초 한 송이를? 망설이는데 타닥타닥 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첫눈이었다.
갈색의 찻잔 속으로 눈송이들이 배추흰나비처럼 내려앉고 있었다. 나는 카푸치노 같은 눈을 저어 맞은 편 바람에게 건넸다. 그녀의 쇄골이 잠시 흔들린 건 아마도 삐걱거리는 낡은 탁자 때문이었으리라. 웃을 때 드러나는 바람의 덧니 사이에 움막을 짓고 이 겨울은 좀 더 외롭고 높고 쓸쓸해져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시의 길로 이끌어주신 구림 이근식 선생님과 경주대학교 손진은 교수님에게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기쁨을 경주대학교 사회교육원 문예창작반 문우들, 열정이 넘쳐나는 <시 in> 동인들, 통영의 한률 형,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힘이 들 때 기꺼이 곁이 되어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심사평]
동시의 바탕은 동심이다. 사물을 동심의 눈높이에서 조응할 때 때로는 놀람으로, 때로는 기쁨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이 동심이 인간의 원초적 마음이며 동시에서 담아내야할 심상(心象)이기도 하다.
응모된 작품을 정독한 후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박서진 씨의 ‘가다 서다’ 외, 박월선 씨의 ‘돌탑’외 김환 씨의 ‘털실감기’ 외였다.
먼저 박서진 씨의 ‘가다 서다’는 참신하고 개성적인 표현은 결여되나 자연스런 심상의 전개로 동시의 특질을 잘 살렸으며, 특히 생명사랑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함께 보내온 다른 작품의 수준이 고르지 못한 것이 흠이었다.
박월선씨의 ‘돌탑’은 간절한 소원과 기도로 돌탑이 쌓여 올라간다는 시적 발상은 새롭지 않으나, 전체적으로 정제된 심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끝 연의 안이한 처리가 시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다.
끝으로 남은 김환 씨의 작품 중 ‘솜사탕’ 과 ‘털실감기’는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솜사탕’은 할아버지의 낡은 솜사탕 기계에서 피어나고 감겨드는 솜사탕을 통해 발현되는 동심을 환상적 시각으로 정감 있게 형상화하였다.
김환 씨의 다른 작품 ‘털실감기’는 참신한 표현과 정선된 시어, 정감 있는 운율로 형상화한 점이 돋보였다. 소재는 예스럽지만 우리가 간직해야 할 귀중한 삶의 한 정서를 동시로 되살려놓았다.
‘솜사탕’ 과 ‘털실감기’는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여도 큰 흠은 없었다. 그러나 ‘털실감기’를 최종 당선작으로 결정한 이유는 ‘솜사탕’보다 ‘털실감기’의 눈높이가 동심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털실감기’ 에는 동심이 생동감 있게 살아있다는 것이다.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빈다.

(하청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