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2009 신춘문예 한국일보 동시 당선작

문근영 2009. 1. 6. 19:21

 

 

징검돌

 

배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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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산영(裵珊英) ●1958년 충남 천안 출생 ● 인천교대 졸업 ㆍ'창작수필' 신인상(1993) '교원신문' 교원문학상(2006) 공무원문예대전 우수상(2006) 등 수상 ● 현 안산 경일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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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 김용택(왼쪽), 이상희씨가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김주영인턴기자(고려대 언론학부4)

처음부터 제자리를 찾은 건 아니었어

물속에서 이리 저리 흔들렸지

센 물살이 다가올 때

넘어질 것 같아

눈이 아찔했지

내 등을 밟고 간

수많은 발자국

많이 아팠지만

그렇게 흔들리면서 자리를 잡았지

이젠

거친 물살, 거친 발걸음에도

끄덕하지 않아

가만 들어봐

내 곁에서 들리는

흐르는 물소리

[당선소감] 동시와 몰래 연애 접고 이젠 진짜 사랑 꿈꿔

저녁밥상을 준비하다 맞이한 당선 소식, 그 무슨 반찬보다도 맛난 밥상을 마주한 저녁이었습니다. 어린애 같다고, 그래가지고 사회생활은 어찌하누 늘 걱정하시던 엄마 앞에서 조금은 어깨에 힘주며 웃어보인, 지난 2년여 동안 참 많이 아파하고 힘들어하던 큰아들 준이가 축하해요 엄마, 하며 조금은 뚝뚝하게 건네주는 말이 그래도 싫지 않은, 아쉬움이라면 군대간 작은 아들 준엽이가 문득 더 보고 싶어지기도 하는 저녁이었습니다.

여기까지 급히 오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하고 챙기지 못했던 모습들이 이제야 보이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드는, 때로는 상처주고 상처받아 마음 끙끙 앓던 시간들 이제야, 그대들이 나를 잡아준 벽과 손 잡은 못이고 징검돌이었음을 이제는, 나도 그대들의 손을 잡아주는 징검돌이 되고 싶어지는 저녁입니다. 그동안 동시를 마음에 품고 남몰래 연애하던 짓 그만두고 이제 진짜 사랑을 해보고 싶은 저녁입니다

곳곳에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는 눈빛들, 더는 놓치지 않고 낮고 천천히, 나의 주파수를 정확히 맞추고 가고 싶은, 그래서 이 다음 삶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날 누군가의 위안이 되는 김 모락 나는 따끈한 시를 조촐히 밥상 위에 올려놓고 또다른 우주에로의 여행을 살짝 미소지으며 떠나고 싶은 그런 저녁입니다.

오늘의 맛난 밥상 차려주신 한국일보사와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의 두 손 모읍니다.



[인터뷰] "마음의 주파수 맞추면 모든것이 동시가 됩니다"

"소복이 쌓이는 첫눈처럼, 먹물이 스며드는 한지처럼, 풀꽃 같이 작지만 향이 있고 울림이 있는 것, 그것이 동시의 매력이 아닐까 해요."

안산 경일초등학교 교사 배산영(51)씨는 교단에서는 이미 문재(文才)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1993년 수필전문지 '창작수필'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고 2000년대초부터 동시를 쓰기 시작한 뒤로는 '교원신문' 교원문학상(2006), 행자부 공무원문예대전 우수상(2007) 등 연거푸 상을 받았다.

대학시절(인천교대)부터 문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어오긴 했지만 갓 시작한 교직생활에, 연년생인 어린 두 아들 뒤치다꺼리에 눈코뜰 새 없었던 20대 때는 글쓰기와 연을 맺지 못했다.

10년쯤 지나자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수필로, 동시로 세상의 문을 두드렸다. "수필로 시작했지만 수필을 쓸 때는 솔직히 난감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다"는 배씨는 "아이들의 모습을 늘 관찰하면서 아이들과 대화하는 기분으로 자연스럽게 동시를 쓰게 됐다"고 회상했다.

"'마음의 주파수'만 맞추면 모든 것이 동시가 된다"는 배씨에게는 당선작에서 볼 수 있듯 자연과의 대화, 사물과의 대화가 중요한 시적 제재다. "아이들이 그런 것들에 눈을 뜨도록 살짝 뚜껑을 열어주는 것이 동시"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고 오규원 시인의 동시집 <나뭇속의 자동차>를 아끼는 동시집이라며 "이 동시집은 색이 조금 다르다. 길을 안내하면서도 아이들 각자가 느끼도록 한다"고 소개하면서 자신의 시적 지향점을 우회적으로 이야기했다.

"신춘문예 당선으로 산봉우리 하나를 넘은 기분"이라는 배씨는 지난해로 교단생활 30년이 됐다. 그는 시업(詩業)에 매진하기 위해 5년 후에는 교직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시 쓰기 외에도 서예, 전각, 수채화 등을 꾸준히 배우며 '조화된 교양인'을 꿈꿔왔다는 그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즐거워할 수 있는 동시화집을 내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어린이들 스스로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동시를 쓰고 싶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미덥다.



[심사평] 케케묵은 소재지만 '자리잡기' 주제 쉽게 펼쳐내

신춘문예 응모 동시 작품을 읽을 때마다 '변하지 않는 것' 두 가지를 확인하게 된다. 그 하나는 동시 쓰기를 '최대한 유치한 정서로써 아이들 세계를 노래하거나 자연에 빗대어 노래하기'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며, 또 하나는 시대성을 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다.

세계 경제위기 현실을 반영한 소재로서의 '고된 아버지'가 빈번히 등장하고, 다문화 가정을 상징하는 '베트남 아줌마'와 '짝꿍네 베트남 엄마' '필리핀 엄마'가 드문드문 눈에 띄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작품의 완성도에 있을 것이다.

어떤 소재를 택하든간에 그것이 작품의 주제를 펼쳐내는 데 적절한 비유 또는 바탕 재료로 활용되지 못하고 겉돌 때, 완성도에 이바지하지 못할 때, 우리는 하필 왜 이 소재를 택했는가 라고 묻게 된다.

두 심사위원이 약간의 망설임 끝에 당선작으로 낙점하는 데 동의한 '징검돌'(배산영)은 오히려 케케묵은 소재를 다루고 있다.

돌 하나가 여울 바닥에 탄탄히 자리를 잡아 어떤 거친 물살에도 휩쓸려 내려가지 않고 제 역할을 하게 되기까지의 인내와 노력은 징검돌이 되고 나서의 자신감에 찬 독백을 통해, '삶의 거친 물살을 견디고 버텨낸' 자가 온몸으로 체득한 진정성을 공유하는 감동에 이르게 된다.

압축과 상징을 구사하되 조금도 어렵지 않게 '자리 잡기'라는 주제를 구현한 시인의 노련한 솜씨는, 그러나 함께 투고한 두어 작품의 상투적이고 허전한 마무리 때문에 잠시 흔쾌한 결정을 주저하게 했음을 밝혀둔다.

시를 써본 사람은 시의 마지막 연이나 행에 이르러 긴장의 끈을 놓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상투적인 감상으로 바삐 매듭지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바람에 시 전체의 진정성마저 무너지는 난국에 처한 경험 또한 있을 것이다.

'문창호지 바르는 날' 외 8편을 낸 천선옥의 경우, 모든 시편에서 이러한 실패를 거듭하고 있어 다정하게 그려낸 갖가지 심상을 밀어내야 했다. '저녁' 외 2편을 낸 박용학의 시들은 흡사 선시(禪詩)처럼, 최소의 언어로 최대의 의미를 구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낮은 곳에/ 피었다// 발목 근처에/ 피었다// 눈여겨보는 곳에/ 피었다'('제비꽃' 전문)는 뭇 시인과 가수들이 즐겨 노래하는 제비꽃을 다시 한 번 새로이 현현케 하는 성과를 낳았다. 그러나 짧은 시는 으레 생산력을 의심받는 법, 모쪼록 충분한 양을 투고하여 시인의 샘이 가없이 무궁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바란다.

권기호의 '연장'과 '할머니 무릎의자' 또한 순정한 마음이 길어낸 사물과 풍경을 좀 더 가치있게 조형화하지 못한 아쉬움이 큰 작품이었다. 그밖에도 '된장 담그기' 외 4편을 낸 이현주의 '느린 세탁소' '마중'이 눈길을 끌었다.

●심사위원김용택(시인) 이상희(시인ㆍ그림책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