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공기는 내 사랑 / 정진규

문근영 2008. 11. 14. 01:26

공기는 내 사랑 / 정진규

 

 감자 껍질을 벗겨봐 특히 자주감자 껍질을 벗겨봐 감자의 살이 금방 보랏빛으로 멍드는 걸 보신 적 있지 속살에 공기가 닿으면 무슨 화학 변화가 아니라 공기의 속살이 보랏빛이라는 걸 금방 알게 되실 거야 감자가 온몸으로 가르쳐주지 공기는 늘 온 몸이 멍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되지 제일 되게 타박상을 받는 타박상의 일등 一等, 공기의 젖가슴이 가장 심해 그 타박의 소리를 어느 한밤 화성 근처 보통리 저수지에서 들은 적 있어 밤 이슥토록 떼로 내려앉았다가 무엇의 습격을 받았는지 일시에 하늘로 치솟아오르던, 세상을 들어 올리던 청둥오리떼의 공기. 일만평으로 멍드는 소리를 들은 적 있어 폭탄 터졌어 그밤 그 순간 내 사랑도 일만 평으로 멍들었어 그 소리의 힘으로 나 여기까지 왔지 알고 보면 파탄이 힘이야 멍을 힘이라 말할 수밖에 없어 나를 감자 껍질로 한번 벗겨봐 힘에 부치시걸랑 나의 멍을 덜어 가셔 보탬이 될 거야 이젠 겁나지 않아 끝내 너를 살해 할 수 없도록 나를 접은 공기, 공기는 내 사랑!

 


 2008. 미당문학상수상작품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