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 백무산
평생 여자가 맨 고랑이 얼마인지 알 수 없으나 평생을 닳아낸 호미가 몇 개인지 알 수 없으나 여자에겐 오랜 세월 밭고랑 매는 일이 방고래에 불을 들이는 일이었다 밭고랑이 다 식을 때까지 분리되지 않았다 여자의 몸이 호미처럼 식은 다음에야 사람들이 알아차렸다 지방도에서 빤히 보이는 밭머리에 사람들이 오가고 양밥이라고 했다 섣달그믐 날 집안의 액을 몰아낸다고 목격자들은 모두 밭고랑 사이에서 호미 한 자루는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나간 사람들이 올 때까지 어스름 산그늘이 여자의 몸을 감싸 안고 이슬을 가려주고 있었다 마을 남자들 경운기 트랙터 몰고 고속도로에 올라가서
밭고랑에 쓰러진 여자는
한나절은 족히 누워있었으나 발견되지 않았다
여자의 몸은 둔덕처럼 두두룩하니 굽어져 있어
고랑에 들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호미를 쥔 몸 어디에서부터 호미자루인지 분간이 쉽지 않았다
밭고랑을 훈훈하게 데워놓으면 엄나무처럼 아픈 허리도 금세 환해졌다
지도를 든 검은 승용차들이 들락거렸으나 아무도 보지 못했다
짚으로 허재비 만들어 잘 대접하고는 액을 몰고 가라고
들판 멀리 내던지던 짚허재비 양밥처럼 버려져 있었다
절반은 돌아오지 못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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