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호미 / 백무산

문근영 2008. 11. 14. 00:36

호미 / 백무산


밭고랑에 쓰러진 여자는

한나절은 족히 누워있었으나 발견되지 않았다

 

평생 여자가 맨 고랑이 얼마인지 알 수 없으나
여자의 몸은 둔덕처럼 두두룩하니 굽어져 있어
고랑에 들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평생을 닳아낸 호미가 몇 개인지 알 수 없으나
호미를 쥔 몸 어디에서부터 호미자루인지 분간이 쉽지 않았다

 

여자에겐 오랜 세월 밭고랑 매는 일이 방고래에 불을 들이는 일이었다
밭고랑을 훈훈하게 데워놓으면 엄나무처럼 아픈 허리도 금세 환해졌다

 

밭고랑이 다 식을 때까지 분리되지 않았다

여자의 몸이 호미처럼 식은 다음에야 사람들이 알아차렸다

 

지방도에서 빤히 보이는 밭머리에 사람들이 오가고
지도를 든 검은 승용차들이 들락거렸으나 아무도 보지 못했다

 

양밥이라고 했다 섣달그믐 날 집안의 액을 몰아낸다고
짚으로 허재비 만들어 잘 대접하고는 액을 몰고 가라고
들판 멀리 내던지던 짚허재비 양밥처럼 버려져 있었다

목격자들은 모두 밭고랑 사이에서 호미 한 자루는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나간 사람들이 올 때까지 어스름 산그늘이 여자의 몸을 감싸 안고 이슬을 가려주고 있었다

 

마을 남자들 경운기 트랙터 몰고 고속도로에 올라가서
절반은 돌아오지 못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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