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풀밭 위의 식사 / 이윤설

문근영 2008. 11. 13. 09:39
                                                                         


풀밭 위의 식사 / 이윤설

 

 

런닝셔츠 목살이 싯붉은 사장이 삼겹살을
올렸다 불판은 비좁고 우리는 잔디에 엉덩이를 찔려
움찔움찔 젓가락을 들었다 놓는 동안
노을에 잔뜩 들러붙은 겹겹의 구름이
유원지 놀이터 너머로 지글지글 타오르고 있었다.
자 많이들 들자구, 고기는 충분하니까, 아버지처럼
자상한 목소리의
한쪽으로 너무 기울은 시소 그림자

양갈래 머리를 쫑쫑 땋은 계집애 하나가
반달타이어에 시소를 쿵쿵 찧다 말다
우리쪽을 빤히 보다 말다
피습피습 습기 먹은 탄이 바람 빠지는 소리
불이 약한가 불구멍을 좀 열어놓지
종이컵에 따라놓은 첫잔의 건배는 거품이 껴져가고
불완전 연소된 연기 속에서 매캐하게 상을 찌푸리며
고깃점을 뒤집다, 이렇게 모이니 한가족 같지 않아?
자꾸자꾸 불 밑을 살피는
이마에 땀이 흐르는 사장의 벌건 얼굴을,
멀거니 바라보며 둘러앉은
우리는 한가족같이
말이 없었다
퇴근이 늦어지고 있었다

 

2006년 <신춘문예 당선시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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