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염전/ 김평엽
내게도 인생의 도면이 있었다
갱지 같은 마누라와 방구석에 누워
씨감자 심듯 꿈을 심고 간도 맞추며 살고 싶었다
바닥에 엎디어 넙치처럼 뒹굴며
아들 딸 낳고 싶었는데
돌아다보면 염전 하나 일구었을 뿐
성혼선언문 없이 산 게 문제다
선녀처럼 그녀를 믿은 게 문제다
정화수에 담긴 모든 꿈은 증발하고
외상의 눈금만 술잔에 칼집을 내고 있었다
알았다, 인생이란 차용증서 한 장이라는 것
가슴뼈 한 개 분지르며 마지막 가서야 알았다
소금보다 짠 게 계집의 입술임을
염전에서 바닥 긁는 사내들이여 아는가
슬픔까지 인출해 버린 밑바닥에서
누구의 눈물도 담보할 수 없다는 것
계집 등짝 같은 해안에 자욱이 되새 떼 내려
노랗게 우울증 도지는 현실
염전만이 소금을 만드는 게 아니다
우리 가슴을 후벼도, 아홉 번 씩 태운
소금 서 말 쯤 너끈히 나온다는 것
'다시 보고 싶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꽃이 피는 이유 / 권정일 (0) | 2008.11.14 |
---|---|
호미 / 백무산 (0) | 2008.11.14 |
떨림 / 강미정 (0) | 2008.11.14 |
풀밭 위의 식사 / 이윤설 (0) | 2008.11.13 |
어머니는 해마다 꽃을 피우셨다 / 김우진 (0) | 2008.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