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붉은 염전 / 김평엽

문근영 2008. 11. 14. 00:35

붉은 염전/ 김평엽

 

내게도 인생의 도면이 있었다

갱지 같은 마누라와 방구석에 누워

씨감자 심듯 꿈을 심고 간도 맞추며 살고 싶었다

바닥에 엎디어 넙치처럼 뒹굴며

아들 딸 낳고 싶었는데

돌아다보면 염전 하나 일구었을 뿐

성혼선언문 없이 산 게 문제다

선녀처럼 그녀를 믿은 게 문제다

정화수에 담긴 모든 꿈은 증발하고

외상의 눈금만 술잔에 칼집을 내고 있었다

알았다, 인생이란 차용증서 한 장이라는 것

가슴뼈 한 개 분지르며 마지막 가서야 알았다

소금보다 짠 게 계집의 입술임을

염전에서 바닥 긁는 사내들이여 아는가

슬픔까지 인출해 버린 밑바닥에서

누구의 눈물도 담보할 수 없다는 것

계집 등짝 같은 해안에 자욱이 되새 떼 내려

노랗게 우울증 도지는 현실

염전만이 소금을 만드는 게 아니다

우리 가슴을 후벼도, 아홉 번 씩 태운

소금 서 말 쯤 너끈히 나온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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