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손톱 속에 민달팽이

문근영 2008. 11. 4. 08:06

      손톱 속에 민달팽이

                  정용화

 

차 문에 손가락을 찧었다

순간, 오른손 검지 손톱에

천둥이 치고 번개가 일었다

반달로 떠있던 낮달이 사라지고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왔다

손끝이 욱신거리는 내내 비가 내렸다

비가 그칠 즈음 손톱이 빠져버렸다

단단함 속에는 늘 여리고

부드러운 것이 감춰져있는 것일까

손톱이 빠져나간 자리에

맨살의 보드라운 민달팽이 한 마리

세상 밖으로 기어 나왔다

풀잎도 나뭇잎도 아닌 손가락 끝에서

처음으로 햇살의 눈부심과

바람의 시린 맛을 견뎌야 한다

때로는 물에 빠지기도 하고

거친 모서리에 자주 걸리면서

달팽이 한 마리 온 힘으로 조금씩

단단함을 등 쪽으로 밀어 올린다

다시 둥글고 딱딱한 집 한 채 짓는 동안

낮달이 손톱 위로 내려 온다

 

 

정용화 시인,

1961년 충북 충주.

중앙대 예술대학원 전문가과정 수료. 동국대 대학원 문창과 석사과정 재학.

2001년 <시문학> 2006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등단.

2002년 시집 <흔들리는 것은 바람보다 약하다> 시문학사

2008년 <바깥에 갇히다>천년의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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