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속에 민달팽이
정용화
차 문에 손가락을 찧었다
순간, 오른손 검지 손톱에
천둥이 치고 번개가 일었다
반달로 떠있던 낮달이 사라지고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왔다
손끝이 욱신거리는 내내 비가 내렸다
비가 그칠 즈음 손톱이 빠져버렸다
단단함 속에는 늘 여리고
부드러운 것이 감춰져있는 것일까
손톱이 빠져나간 자리에
맨살의 보드라운 민달팽이 한 마리
세상 밖으로 기어 나왔다
풀잎도 나뭇잎도 아닌 손가락 끝에서
처음으로 햇살의 눈부심과
바람의 시린 맛을 견뎌야 한다
때로는 물에 빠지기도 하고
거친 모서리에 자주 걸리면서
달팽이 한 마리 온 힘으로 조금씩
단단함을 등 쪽으로 밀어 올린다
다시 둥글고 딱딱한 집 한 채 짓는 동안
낮달이 손톱 위로 내려 온다
정용화 시인,
1961년 충북 충주.
중앙대 예술대학원 전문가과정 수료. 동국대 대학원 문창과 석사과정 재학.
2001년 <시문학> 2006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등단.
2002년 시집 <흔들리는 것은 바람보다 약하다> 시문학사
2008년 <바깥에 갇히다>천년의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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