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함민복의「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감상

문근영 2019. 2. 11. 10:17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함민복



뜨겁고 깊고
단호하게
매순간을 사랑하며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들을
당장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데
현실은 딴전
딴전의 힘으로 세계가 윤활히 돌아가고
별과 꽃이 아름다운 것 같기도 하지만
늘 딴전이어서
죽음이 뒤에서 나를 몰고 가는가
죽음이 앞에서 나를 끌어당기고 있는가
그래도
세상은 세계는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단호하고 깊고
뜨겁게
매순간 나를 낳아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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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써야지 시만이 내 삶의 목적이야 라고 의지를 불태우던 날들이 있었다. 아니 지금도 틈만 나면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시와의 동행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고 자꾸 딴데로 눈이 돌아갔다. 한동안은 명상에 혹 했었다. 그렇다고 거기에 쑥 들어가 명상가로 사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깨달음을 향해 간다는 이의 말이 절절히 공감이 되었을 뿐이다. 또 한동안은 유명 스님의 법문에 심취해서 종일 듣기도 하고 정신세계를 다루는 책들에 빠져 급기야 채널링이나 사물과의 대화법에 흥미를 가지기도 했었다.

  지난 몇 년간 나는 시인의 말처럼 딴전만 피웠다. 시를 뜨겁게 사랑하며 뜨겁게 쓰면서 살아야 하는데 현실에 발 디디지 못하고 몽상 속에서 살아온 것 같다. 그렇지만 딴전의 힘으로 별과 꽃이 아름답다는 시인의 말에 온전히 수긍한다. 늘 아프고 힘든 것만 같았던 날들이 그 딴전으로 인해 긍정으로 돌아서고 순간의 소중함과 인연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영혼의 질량이 높아지고 세상을 넓게 바라보는 힘을 얻었다.

  문득 이제는 딴전 그만 피워도 시를 통해서 그 모든 걸 다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 속에 이미 그 모든 삶의 이유와 까닭이 다 들어 있음을 깨닫는다. 눈이 어두워 다 읽어내지 못하고 오래 방황했다.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한다고 우둔하게도 이제야 감을 잡는다.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단호하게 뜨겁게 기다려준 시가 고맙다. 그리고 이렇게 시를 통해 매순간 나를 낳아주는 세계의 비밀을 알게 해 주는 시인들이 경외스럽다. 

  - 엄정옥 시인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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