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달맞이꽃을 먹다니 / 최문자

문근영 2019. 2. 11. 10:16

달맞이꽃을 먹다니


           최문자


감마리놀렌산이 혈행에 좋다고

그렇다고

그 꽃을 으깨다니

그 꽃 종자를 부수고 때리고 찢어서

캡슐 안에 처넣다니

그 피범벅 꽃을 먹고

혈관의 피가 잘 돌아가다니

욕심껏 부풀린 콜레스테롤이 그 꽃에 놀아나다니

그렇다고 나까지

하루 두 번 두 알씩 그걸 삼키다니

머지않아 꽃향기로 가득 찰 혈관

그렇다고

하필 그 환한 꽃을 죽이다니

밤마다 달을 바라보던 그 꽃을

꽃 심장에 가득 찼을 달빛을

그 달빛으로 기름을 짜다니

노오란 꽃에 앉았던 나비의 기억까지

모두 모두 으깨다니

부서진 달빛, 꽃잎, 나비

두 알씩 삼키고 내 피가 평안해지다니

생수 한 컵으로 넘긴 감마리놀렌산 두 알

혈관에 달맞이꽃 몇 송이 둥둥 떠다닌다





           시집 『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시와표현, 2015)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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