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변신 / 김이듬

문근영 2019. 2. 11. 10:15

변신


     김이듬



나는 변하겠다

아무도 나를 못 알아보게

뼈를 톱으로 갈 때는 아프겠지

아픈 건 아포리즘만큼 싫다

성형 전문의가 검정 펜으로 여자 얼굴에 직선 곡선을 그은 사진이

버스 손잡이 앞에 있다

전후의 사람이 동일인이라면

나도 하고 싶다


손님에게만 화장실 열쇠를 주는 카페가 싫다

수만 마리 구더기가 되어 주방을 허옇게 뒤덮고 싶다


나는 긴 목을 더 길게 빼고 들어가서 눕는다

목에서 허리에서 뼈 부러지는 살벌한 소리

내장을 터뜨리려는 듯 주무르다 압박

위는 딱딱하고 장은 다른 사람에 비해 아주 짧습니다

맹인 안마사의 부모는 젖소를 키웠다고 한다

형편이 어렵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나와 동갑에 미혼

고3 때부터 나빠지기 시작한 시력으로 이젠 거의 형체만 어슴푸레 보인다는 말을

왜 내가 길게 들어주어야 하나

인생 고백이 싫다

다른 감각이 발달되었다는 말을 믿어주어야 하나

그의 눈앞에서 나는 손을 흔들어보고 혓바닥을 날름거려보지만

웃지 않는 사람

자신의 굽은 등을 어쩔 수 없는

논산에서 순천 가는 길의 서른 개도 넘는 터널에 짜증 낼 수 없는

언제나 어두운 낮과 밤

들쭉날쭉하는 내가 싫다


이미 누군가 다 말해버렸다 쓸 게 없다

가슴이 아프다

작아서


금천동 사거리 금요일 저녁 봄날

아무도 안 오는데 명성은 무슨

명성부동산 위층 명성지압원 간이침대에 엎드린 신세

잠들면 어딜 만질지 모르니까 정신 차리고

시를 쓴다

(화분에 씨를 심고 뭐가 될지 모르는 씨앗을 심고 흙에다 눈물을 떨어뜨려요

눈물로만 물을 주겠어요 그런데 씨가 그러길 바랄까요, 까지 쓰는데)


뭐 합니까 돌아누우세요

씨알도 안 먹힐 시도 되지 않고

야하게 꾸며 나가고 싶은 저녁이 간다

지압사에게 나를 넘긴다

눈멀어가는 남자가 인생에 복수하듯 나를 때리고 비틀고 주무른다 이러다

변신은 못 하고 병신 되는 거 아닐까




             《현대시학》2014년 5월호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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