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민 환(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워커(Jack L. Walker)라는 정치학자는 미국에서 이익집단이 부상하고 있는 사실을 보고 1991년에《Mobilizing Interest Groups in America》라는 책을 낸 바 있다. 이 책은 미국의 예를 분석한 것이지만 다른 나라의 이익집단을 이해하는데도 유용한 틀을 시사한다. 그에 따르면 이익집단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유형은 해당 집단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집단이다. 전국자동차제조업협회와 같은 단체가 그 전형적인 예다. 이 단체는 전적으로 자동차제조업자의 입 노릇을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이런 단체는 많다. 상공회의소나 경제인연합회 등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둘째는 전문 직업인들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갖는 비영리집단이다. 워커는 그 대표적인 단체로 전국약물남용방지협회를 들었다. 이 단체는 보건관련 전문인들이 주도하는데 이름대로 약물오남용 방지운동을 벌인다. 구성 요소나 목적은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언론개혁시민연대도 이 범주에 속할 것이다. 이 단체는 전 현직 언론인과 언론단체가 폭넓게 참여하여 언론개혁운동을 벌이고 있다.
공동선을 추구하기에 사회적 영향력 막강
셋째는 민권이나 환경, 소비자문제 등 집합적 이해관계에 관심을 갖는 시민지향적 집단이다. 이 집단은 직업적 상업적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이상(理想)이나 대의(大義)를 추구한다. 워커는 그 대표적인 예로 행정개혁을 목표로 조직된 커먼코즈(Common Cause)나, 공기 문제에 집중적인 관심을 쏟는 깨끗한 공기를 위한 시민모임(Citizens for Clean Air)을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범주에 속하는 시민단체가 많다. 참여연대나 환경운동연합은 역사도 오래되었지만 사회적 영향력도 여전히 막강하다.
워커는 이들 세 유형의 단체 가운데서도 특히 세 번째 유형, 즉 시민지향적 집단에 주목했다. 그는 이 유형의 집단이 영향력을 키워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한정하지 않고 공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때문에 사회의 공동선을 구현하는데 이바지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미국에서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에 들어 각종 시민단체가 나타나 다양하고도 활발한 운동을 벌였다. 특히 괄목할만 한 것이 시민지향적 시민운동이었다. 민주화라는 거대목표가 달성되어 시민들이 일상생활에 매몰되고 사회의 공동선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게 마련인 시점에서 그런 시민단체가 대두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권력을 정치권이 독점하지 않고 시민세력이 조금이나마 분점 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의 가시적인 과실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시민운동이 급격하게 쇠락하는 이유는?
90년대 이래 우리나라에서 시민지향적 시민단체가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한 힘의 바탕은 무엇이었을까? 외형적이나마 정파적 이해관계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이 모여 낙천 낙선운동을 벌일 때도 그 단체들이 나름대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위법성 논란마저 억누르고 일정한 효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그런 성격은 이제 옛이야기일 뿐이다. 2000년대에 들어 시민단체는 급격하게 정치화했다. 시민운동 자체가 정치권에 진입하기 위한 발판이 되었다. 거물급은 정치권으로, 중견은 수많은 관변단체로 진출했다. 2000년대 초중반에 진보주의 시민단체 출신들이 그렇게 '출세'를 했다면 후반기 이후에는 보수주의 시민운동가들이 온몸으로 진보주의자들과 맞서며 정계나 관변에서 그야말로 군웅할거하고 있다. 어떤 부류는 마치 자유당 시절의 백골단이나 땃벌떼를 연상하게도 한다. 그렇고 그런 과정을 거쳐 시민운동은 무서운 속도로 쇠락하고 있다. 정파성을 초극한 새로운 시민운동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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