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지 창(영남대 독문과 교수)
1970년대는 흔히 ‘유신시대’나 ‘긴급조치의 시대’ 로 규정된다. 가령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거나 시험을 거부하여도 사형, 무기징역,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던 금지와 처벌의 시대였다.
“거짓말이야!” 실연의 아픔도 불온한 선전선동으로
당시의 청년들은 산소가 부족한 고산지대의 등산객처럼 숨을 헐떡거리며 분노와 한탄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그들이 발견한 탈출구는 술과 노래였다. 그러나 술자리도 야간통금 때문에 밤 12시를 넘기면 안 되었고, 노래도 금지곡은 부르면 안 되었다. 심지어는 남자가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도, 여자가 무릎 위 몇 센티미터 이상 올라가는 미니스커트를 입는 것도 금지와 단속의 대상이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네.” 송창식이 부른 「고래사냥」의 첫머리에는 이 시대 청년들의 좌절과 분노가 녹아 있다.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애창되던 이 노래도 유언비어 유포를 엄벌에 처하는 1975년의 긴급조치 9호에 뒤이은 이른바 대마초 파동으로 금지된다.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유행어가 나올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는 불신풍조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다. 실연의 아픔도 듣기에 따라서는 불신을 조장하는 불온한 선전선동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더욱 기막힌 것은 콧수염 가수의 원조인 이장희의 「그건 너」가 금지곡으로 찍힌 일이다. ‘책임을 남에게 전가시킨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라는 후렴구를 문제삼은 것이다. 중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시를 배우면서 ‘이 단어는 무엇을 뜻하는가’ 식으로 주입식 교육을 받은 탓인지 검열관들은 노래 가사 한 줄에서도 기어코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야 직성이 풀렸던 모양이다.
가수 이장희가 사는 울릉도에 가보고 싶다
“어제는 비가 오는 종로거리를/ 우산도 안 받고 혼자 걸었네./ 우연히 마주친 동창생 녀석이/ 너 미쳤니 하면서 껄껄 웃더군.” 나는 이 노래가 다른 의미에서 혁명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우선 노랫말이 구어체의 일상어로 되어 있어 명쾌하고 솔직담백하다. 창법도 텁텁하고 직설적이어서 인위적인 꾸밈이나 치장이 배제돼 있다. 기타의 반주도 강렬한 호소력을 증가시킨다. 한마디로 민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대중적 친밀감이 느껴지는 이 노래가 젊은이들의 가슴을 파고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평생 내가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 연예인들을 뒤를 ?아 다니거나 좋아한다는 편지를 보낸 적이 없다. 양희은과 김민기를 좋아했지만, 노래를 즐겨 들었을 뿐, 요즘의 ‘광팬’처럼 열렬한 애정 표현은 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가수 이장희가 오랜 ‘미국 망명생활’(이라고 나는 주관적으로 판단한다)을 접고 울릉도에서 더덕농사를 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조만간 울릉도를 그냥 가보고 싶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거기 살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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