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고슴도치의 마을 / 최승호

문근영 2015. 9. 20. 10:09

고슴도치의 마을

최승호



나비처럼 소풍가고 싶다
나비처럼 소풍가고 싶다
그렇게 시를 쓰는 아이와 평화로운 사람은 소풍을 가고
큰 공을 굴리는 운동회날
코방아를 찧고 다시 뛰어가는 아이에게
평화로운 사람은 박수갈채를 보낼 것이다

산사태는 왜 한밤중에
골짜기 집들을 뭉개버리는가
곰은 왜 마을을 습격하고
산불은 왜 마을 가까운 산들까지 번져 오는가
한밤중에 횃불을 드는 마을의 소리
한밤중에 웅성거리는 마을의 소리

우리들은 고슴도치의 마을에서
온몸에 가시바늘을 키운다
평화로운 사람은 문을 걸고
잠 속에서도 곰에게 쫓길 것이다

우리들은 고슴도치의 집에서
돌담을 높이 쌓는다
평화로운 사람은 한숨을 쉬고
문풍지 우는 긴 겨울밤엔 莊子를 읽으리라


- 김수영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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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崔勝鎬) 1954년 강원 춘천 출생. 춘천교대 졸업. 1977 〈현대시학〉으로 등단.
1982 오늘의 작가상. 1985 김수영문학상. 2003 미당 문학상. 시집 『대설주의보』『고슴도치의 마을』『진흙소를 타고』『세속도시의 즐거움』『회저의 밤』『반딧불 보호구역』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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