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제35회 계명문화상 시 부문 가작 - 열하일기 / 전영아

문근영 2015. 6. 8. 00:56

[제35회 계명문화상 시 부문 가작]

 

열하일기

 

      전영아

 

 

벽이 열렸다 닫히고 나는 열대에 들어왔다

투명한 저 벽을 경계로 온대와 열대가 극명하게 구분된다

먼저 온 누군가가 엎어 논

달구어진 사막을 내가 다시 뒤집어 엎어놓는다

여기는 지금 극한의 건기

구름이 낮게 깔리고 하늘이 가까워지기를 기다리 듯

더위 속에서 우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몸이 된다

데스벨리나 칼라하리 사하라 아니면 타클라마칸 그 어디쯤일 것이다

여우와 전갈의 사막이 펼쳐지고

바람과 시간이 만들어 놓은 물결 같은 모래의 길을 따라

길을 잃고 미라가 된 누군가의 애타는 손길도

터번을 쓴 대상의 낙타가 가시풀을 씹어 제 피를 삼켜야하는

불가해한 목마름의 문제도 여기 있다

지금은

양머리를 덮어 쓴 채 호흡을 조절해야 하는 전전긍긍의 시간

어디서 왔는지 핫팬츠가 냉커피로 호객 행위를 한다

이 건기의 열대에선 뿌리치기 힘든 유혹

그사이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열하에서

사막은 두어 번 더 거꾸로 뒤집혀 내려 쌓이고

숨을 헐떡이며 이 열대에 들어온 이유를 곰곰 생각중이다

벽이 열렸다 닫히고 또 다른 양머리가 열대로 들어온다

짧은 순간 사바나의 바람이 뒤따라 들어왔다 갇힌다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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