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부활/ 이정우

문근영 2015. 6. 6. 08:49

 

 

부활/ 이정우

 

 

그대는

흰 치자꽃을 머리에 꽂고

올리브 숲을 걸어 나온다.

안식일 다음날 새벽,

어두운 나무 사이로 흰 옷자락이 보이고,

울고 있는 여자의 어깨 위로

하느님의 손이 얹힌다.

울지마라, '나'이니라.

이 흰 치자꽃을

네 머리에 꽂아주마.

 

그대는

흰 치자꽃을 머리에 꽂고

또한 가만히 노래 부른다.

 

- 연작시 '노래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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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건이며, 이 사실에 대한 믿음은 인간에게 최대의 축복이자 영광이다. 그리고 부활은 죽음을 무력화 시킨 사건이다. 영혼과 육체 모두 죽음을 이기고 살아난 사건이 부활이다. 이를 빈 무덤이 말해주고 있다. 무덤을 찾은 여인들에게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이것은 복음의 첫 말씀이고 예수님이 누우셨던 빈 무덤은 기독신앙의 기초가 되었다. 부활은 악에 대한 선의 승리, 절망에 대한 희망의 승리, 근심과 염려에 대한 기쁨과 용기의 승리라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부활절을 맞아 “어둠을 빛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변화시키는 숭고한 생명이 우리 사회에 가득하기를 희망합니다”라고 쓴 카드를 개신교와 천주교 주요인사들에게 보냈다. 그러나 비서실에서 알아서 보낸 요식행위에 그칠 게 아니라 부활절의 참뜻을 가장 깊이 새겨듣고 실천하고자 애를 써야할 분은 정작 대통령 자신임을 아셨으면 좋겠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 나흘 뒤인 4월 20일의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항상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과 사랑을 베풀어 왔다”고 한국교회를 평가했다.

 

 그리고서 “우리나라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 국민 모두가 희망과 꿈을 이뤄갈 수 있도록 여러분께서 마음과 지혜를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교회에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께서 교회에 하신 의례적인 이 말씀들은 고스란히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드리는 간절한 바람이기도 한 것이다. 부활의 승리는 우리 모두에게 큰 선물이지만 그것도 받지 못하는 자에겐 아무 소용이 없다. 어떻게 죽은 자가 살아날 수 있는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고 기독교인 가운데도 다른 것은 다 믿어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부활만큼은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있다. 

 

 사실 부활의 과학적 증명은 불가능하여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다. 특히 오늘날 매사에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현대인에겐 더욱 그렇다. 예수님의 부활은 오로지 단 한 번의 일기 일회적 사건이며 두 번 이상 거듭되지 않았기에 더 이상 그 사실을 입증해 보일 수가 없어 부활은 초월적 신비로 밖엔 이해할 수가 없는 사건이다. 예수님이 묻힌 무덤은 무거운 돌,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게 찍어 놓은 봉인, 무덤에 보초까지 세운 삼중의 장치를 뚫고 벌떡 일어나셨다니 턱을 가로 저을만하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지식과 경험치 가지고는 풀 수 없는 신적 영역에서의 사건이다. 마치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온 것이 불가해의 신의 영역이듯.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시어 부활을 믿을 수 있도록 신앙을 주신 것이리라. 이정우 시인 신부님의 시에서처럼 ‘울지마라, '나'이니라. 이 흰 치자꽃을 네 머리에 꽂아주마.’ 하시고선 어깨 위로 손을 얹어주시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부활의 크고 신비한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리라. 세월호에 희생된 영혼들에게도 그리 하리라. 부활하신 그분처럼 우리 또한 부활의 소망을 갖고 조용히 부활을 찬양하는 것이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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