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별처럼
문 정 희
기도는 하늘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
저기 홀로 서서
제자리 지키는 나무들처럼
기도는 땅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
저기 흙 속에
입술 내밀고 일어서는 초록들처럼
땅에다
이마를 겸허히 묻고
숨을 죽인 바위들처럼
기도는
간절한 발걸음으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깊고 편안한 곳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저녁별처럼
어린 시절 소리지르며 발 구르며 기도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괴이쩍었다. 무엇을
구하는 것일까? 간혹 북한 방송을 통해 보게 되는, 눈물 흘리고 발을 구르며 일제히
두 손을 열렬히 흔들며 소리치는 모습에선 어린 시절의 그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기도란 무엇을 구하는 형식인가? 기도란 자기를 줄이고 버리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여기 아름다운 기도의 형식이 있으니 고요히 서 있는 저 나무의 자세와, 초록을 다해
일어서는 풀잎들, 겸허히 숨죽인 바위들의 자세가 그것이다. 다만 침묵에 귀 기울여
스스로 고요해지는 그것이다. 그리하면 깊고 편안한 저녁별의 세계에 도달하리라.
- 장석남 . 시인 . 한양대교수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꽃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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